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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학] 우정의 선교, 열정을 붙잡다 리뷰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3. 30.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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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학 서적들 중 가장 재미가 없는 책이 바로 선교책이다. 억지로 꾸역 꾸역 참고 읽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류의 책이 재미가 없다.

 

우정의 선교 열정을 붙잡다 리뷰

 

요약
저자는 21세기의 선교 패러다임은 과거의 것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과거의 서구 제국주의, 물량주의, 성과위주의 평가, 보여주기 같은 모습들 대신 근본적인 인간미를 회복하는 선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우정선교다. 우정 선교를 간략하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하나님과의 우정 2) 선교사들간의 우정 3) 현지인들과의 우정이다. 부가적으로 추가하자면 후원 교회와의 우정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정 선교의 방향성을 매우 간략하게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 우정선교라는 것이 기존에 한국 교회가 해왔던 교회개척, 교육사역, 신학교 운영, 구제봉사, 의료지원, 제자훈련 등과 동떨어진 무엇인가? 기존에 해왔던 방식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인가? 그런 의도는 아니다. 저자는 기존에 해왔던 방식과 우정 선교가 절대 상호 모순되거나, 상호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맹목적인 열심 이전에 가장 근본적인 신학원리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 회복에 대한 정의를 우정선교라는 표현으로 제시한 것이다. 우정선교를 실제적으로 실현하는 세부적인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저자는 이 우정선교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우정에 대한 동서양 사람들의 관점을 제시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우정은 양질의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시되는 우정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사랑을 대략 3가지로 분류했다. 아가페/필리아/에로스가 여기에 포함된다.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으로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는 구현해 내기 어려운 것이다. 에로스는 육체적인 관계를 내포하는 사랑인데, 이것에는 자신의 육체적 욕구를 해소하기 원하는 이기적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에로스는 남녀 관계를 먼저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 현장에서 구현될 수 없는 사랑이다. 이것은 가정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가페와 에로스가 아닌 필리아를 제시하고 있다. 이 필리아는 바로 예수님이 말하셨던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즉 친구간의 우정 같은 사랑이다. 본질상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지신 후 우리를 마치 친구처럼 대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다른 대상들을 섬기는 한결 같은 사랑을 우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필리아가 성경적인 모델임을 나타내기 위해 모세와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셨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셨다는 말이 절대 두 존재 사이의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하나님은 완전한 절대자이시고, 모세와 아브라함은 죄와 허물이 많은 연약함 투성이인 인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절대 위대하신 하나님이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행해오신 하나님의 겸손하고, 신실한 태도를 우리 역시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단순한 종이 아니라 특별한 동반자로 승격된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한 대위임령을 내리실 때 이런 절차를 이행하셨다. 즉 우정 선교라는 개념은 철저히 성경적이다. 그것은 동서양의 철학 책에만 존재했던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우정선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수직적 관계 속의 우정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역이나 선교를 하다 보면 하나님과의 우정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역을 분주하게 하다가 이 수직적인 우정이 약해지면, 결국 내적으로 흘러 나오는 충만함이 없어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우정이라는 끈이 없어지면 그 사역은 그분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역자들은 이를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우정이 끊어지지 않게 도와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이후에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바로 선교사들간의 우정일 것이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분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지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사들이 활동 하는 곳에 반목이 매우 심하다. 저자는 마치 한국 사회처럼 선교사들 역시 각자도생 하는 모습을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고 말한다. 또한 어떤 선교사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강하고 헌신적인데, 옆으로 함께 부름을 받은 동료 선교사들과의 관계는 아픈 상처로 얼룩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는 요한복음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혼자서 그분의 비전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지인과의 우정 선교의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중국에서 활동했던 예수회 신부 마태오 리치(1552-1610)를 예로 들고 있다. 마테오 리치는 적응주의 선교 모델의 대가였다. 그는 철저하게 현지의 문화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정한 우정 선교란 바로 적응의 모양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가 우정(friendship)에서 비롯된 신뢰를 중요시 하는 문화임을 파악했다. 마태오 리치는 현지인들과 우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원했고, 이를 위해 성경에 기반한 진정한 우정을 보여줬다. 그는 이런 과정 속에서 폐쇄적인 관계의 한계성을 뛰어넘었고, 폭넓은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복음의 상황화로 이어졌고, 자신의 본질은 고수하면서도 현지 문화를 일관성 있게 환대했다. 당시 북경에 체류했던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문화/종교를 궁금해하며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현지인들을 우정으로 대하고, 관계에 열려 있는 태도를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한다.

느낀점
개인적으로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은 하나님 사랑, 동역자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표현이 우정과 동의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한국 선교사들이 서로 단합이 잘 안될까?” 하는 문제를 보면서 이것이 그냥 선교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넘어서 각자 도생의 분위기가 형성된 한국사회의 문화적 부산물일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연 오늘날과 같이 선교가 단기선교여행처럼 매뉴얼화되고, 압축되어서 진행되는 분위기, 그리고 여러 사회적인 이슈로 인해 점점 국가가 양극화가 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분위기에서 우정의 선교가 구현될 수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서로가 서로를 점점 멀리하게 되는 이런 분위기에서 Face to Face를 지향하는 우정선교 모델이 힘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정의 선교 모델 역시 구모델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궁금한 것
함석헌 선생님의 작품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너무 비현실적인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함석헌 선생도 저런 친구는 평생 만나지 못하고 살지 않았을까?

 

동의가 전혀 안 되는 구절

예수님은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정작 교회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왕자에 앉아 있지는 않은가? (????). 대체 어느 교회가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상에서 왕자에 앉아 있는가? 교회가 세상에 무슨 능력이 있는가? 언론이 까면 힘 하나 못쓰는 것이 교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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