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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 암브로시우스 "나봇 이야기"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3. 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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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최원조

출판사: 분도출판사

 

학번: 201931055 김지훈A

책 이름: 나봇 이야기

수업: 교부들의 신학(SHT1531)

담당 교수: 서원모

암브로시우스는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신학자-교부로 칭송 받는 어거스틴의 스승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암브로시우스에 대해서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그가 저술했던 나봇 이야기는 성경의 아합 왕과 이세벨, 그리고 아합 왕의 집 주변에 있는 포도원을 운영하는 농부간에 있었던 일을 강해 형식으로 풀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당시 가난에 신음하던 민중들이 참 많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빈부 격차가 매우 컸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암브로시우스는 부자들의 탐욕을 비판하기 위해 성경의 이 이야기를 활용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암브로시우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원래부터 주교의 자리를 목표로 커리어를 쌓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나이 서른에 밀라노의 주교가 되었지만, 본래부터 그가 그런 자리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법원과 행정기관에서 일했었는데 갑자기 사제직을 떠맡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 관리로서 신학적-사목적 경험이 전무했지만 교회의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아마도 갑자기 어떤 직무를 맡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당황하고 어려움을 겪듯이, 그 역시 갑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겸손하게 표현하기를 미리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기에 배우면서 가르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심플리키아누스 사제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성경을 깊이 깨우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는 얼마나 신실하고, 정직하고, 모범적인 인물이었기에 법원과 행정기관에서 일하던 사람이 이렇게 신망을 얻어 교회의 중요한 종이 되었을까? 그가 평상시에 삶과 행동에서 얼마나 본이 되었을 지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인상 깊은 부분은 그가 오리게네서의 성경 주석을 익혀가면서 자신의 신학 교육을 심화하고 사목 활동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정통 교회는 오리게네스를 이단으로 판정한 후 부정적으로만 보려고 하는데, 암브로시우스 같은 바른 주의 종이 그의 책을 통해 자신의 신학체계를 탄탄하게 하려고 했다는 부분 역시 인상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매 순간 치열하게 살다 간 착한 목자 암브로시우스의 삶을 보고 그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시간을 쪼개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신했던 그의 일상을 차마 방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쓴 책인 나봇 이야기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부자는 더욱 베풀어야 한다. 사치를 하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그들을 나중에 책망할 것이다. 자신의 부를 의지하면 안 된다. 기병이 자신의 말을 의지해서는 안되듯이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부라는 것 역시 절대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다른 사람의 재화를 차용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누어 주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간단한 논리다.

그가 나눈 좋은 취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세상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좋은 부자가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인정하지만 말이다. 자기 자신의 재산을 더욱 불리기 위해 기업가들이나 경영자들이 취하는 행동들 중, 비록 그것이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지만 나중에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보급해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부자들이 직접적으로 돈을 내놓고, 베푸는 것이 아니며 철저하게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비간접적인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다이렉트하게 돈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선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저런 마인드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은 괜찮을지 모르겠다. 원래 교회 지도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정책을 짜는 경제 관료나, 다른 정치인들이 저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 간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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