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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진영이 좋아하는 자유주의 신학자 바트어만에 대한 반박 – “예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7. 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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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 마이클버드

무슬림들이 너무 좋아하는 자유주의 신학자 바트어만에 대한 반박 – “예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발제자: 마이클 F. 버드
책 이름: 하나님은 어떻게 예수가 되셨나? (How God Became Jesus)
출판사: 좋은 씨앗
역자: 손현선


그러니까 예수는 정확히 언제하나님이 되었을까? 솔직히 이 질문은 예수가 전혀 하나님이 아니었던 때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일편향된 질문임을 인정하자. 이와 같이 바트 어만 교수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예수를 인간의 삶을 살다 보통 인간의 죽음을 맞이한 인간으로 본다.

예수가 결국 이스라엘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존재(Divined Being)라는 지위로 높여진 것은 예수 사후에 일어난 제자들의 종교적 헌신의 증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어만은 신-인간의 스펙트럼에서 예수를 저평가 한다. 어만의 고백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학에서 예수를 신적 영역으로 높였지만, 내가 보기에 예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항상 인간이었다.”[1]

어만이 예수의 신격(Deity)에 대한 믿음의 역사적 기원에 접근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진화론적이다. , 예수 신앙이 다양한 안팎의 영향을 받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이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수년 전 찰리 모울이 말했듯이 이런 예수관은 한 팔레스타인 랍비에서 출발하여 헬레니즘적 구세주를 섬기는 유사종교의 신적인 주로 귀결된다.”[2]

이 중 어떤 것도 특별히 혁신적이거나 새롭지 않다. 이전에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어만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신념과 예수를 신적 존재로 경배하는 것은 시간이 진행되며 발전된 점진적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가장 최근에 주창한 자다.

언제예수가 하나님이 되었는가에 관해서는 나도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건 신념이 진화하여 된 것도, 어떤 초교파 위원회의 작품도 아니었다. 복음서 저자 요한의 말을 인용하여 나의 답을 언어화할 수 있을 것 같다.

[1:1,
개정]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의 신격은 어떤 교회 공의회의 결의안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만세 전 과거부터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결코 하나님이 된 적이없다. 그는 항상 하나님이었으며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으로 인간이 되었다. 요한의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친 것으로 유일신 정서를 지닌 많은 유대인과 무슬림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저명한 영국 성서학자 C. K. 바렛은 말했다. “요한의 의도는 그의 복음서 전체가 이 한 절에 비추어 읽혀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예수의 행동과 말은 하나님의 행동과 말이다. 만일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요한복음은 신성모독이 된다.”[3]

어만은 예수는 무엇으로 보나 원래부터 하나님으로 간주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예수는 결국 제자들 가운데서 어떤 의미에서 신적 존재가 되었고, 그 후 절대적 의미에서 전능한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이것이 실은 하나의 발전과정이었다는 것[4]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고 마틴 헹엘은 진화과정을 통해 기독론이 발전했다는 많은 위태로운 논증들의 맹점을 드러내 주었다. 그의 논증이다. “예수의 죽음과 가장 초기의 기독교 문서인 바울 서신서에서 발견되는 완성된 형태의 기독론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너무 짧다. 만일 그 시간 내에 어떤 발전이 일어났다면 그저 경이롭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5] 만일 진화적 프로세스가 있었다면 초대교회의 교리가 완결된 시점인 7세기에 달하는 전체 기간보다 이 20년이 채 못 되는 기간에 더 많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6]

헹엘은 옛 종교사학파(Religious History School)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신앙이 출현했는가에 관한 견해를 외과수술하듯이 격파시켰다. 옛 종교사학파의 주장에 의하면 유대 기독교인, 헬라 기독교인, 이방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개별적이며 상호격리된 몇 개의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이들은 제각각 예수 신앙이 형성되는 과정 상의 개별 발전단계를 나타낸다. 이 발전과정은 예수가 인자라는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헬라어를 구사하는 중심부의 신비주의 유사종교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신성화된 (fully divined Lord)’라는 관점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헹엘이 효과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가장 초기의 증거들이 시사하는 바는 아람어와 헬라어를 구사하는 신도들이 처음부터 나란히 공존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가이사야, 다메섹, 안디옥, 로마 등의 지역에서 공존했다. (바울 서신과 사도행전을 통해 파악된) 바나바와 마가 요한, 실라/실루아노, 바울, 베드로와 같은 핵심 인물들의 이동 경로는 이 언어학적 집단들이 어떻게 상호침투하며 서로의 신앙에 상호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사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신적인 주(Divined Lord)로 고백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이 헬라 종교 및 철학과 조우한 결과가 아니었다.

헹엘은 또한 대부분 50년대에 쓰인 바울 서신은 예수의 정체성과 신적 위상에 관해 논할 때 전통적이며 이미 정형화된 표현을 사용하며 (1:3-4:1, 8:6, 4:4, 2:5-11 ) 이는 가장 초기인 40년대 바울의 지중해 동부 선교활동 시기로까지 소급된다고 했다. 바울의 텍스트에는 이미 예수의 선재성, 신적 속성, 창조와 구원의 중재(Meditation) 등을 망라하는, 예수에 관한 현격하게 고양된 주장이 담겨 있다. 물론 헹엘은 발전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서 기자 요한과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후기 로고스 기독론은 예수의 신적 기능을 구체화하고 헬라 형이상학에서 공감할 만한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진정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예수의 선재적 아들 됨(Sonship)과 유대 지혜 전승의 논리적 융합에 근거한 것이지, 이교 원자료(Sources)와의 상호접촉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었다.

헹엘에 의하면 교회의 예수 신앙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헬레니즘적 신비주의 유사종교(Cult)나 영지주의적 대속자 신화(redeemer)가 아니라 체험과 성서 주해의 결합이었다. 아들을 보내신 것과 밀접한 비유가 하나님이 세상 속으로 보낸 지혜의 강림과 승천에 관한 유대 지혜 전승에서 발견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로 고백하는 것은 시편 2편과 110편 묵상에 자극 받은 것이다.

더 초기로 올라가보면 초대 교회 기독론의 맹아적 뿌리를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1) 예수가 최측근의 제자들에게 미친 영향. (2)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부활한 그리스도를 목격한 제자들의 체험과 그 직후의 성령 체험. 이 두 가지 요인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고유하고도 역동적이며 창의적인 충동을 일으켰으며, 이 충동은 예수를 승귀된 주와 하나님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래리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인의 예배 관행이 교리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논증한다[7]. 그러므로 허타도는 신약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기독론적 칭호 연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초대교회의 예배 양식과(worship patterns) 이것이 예수의 신적 위상에 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다룬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초기 기독교인의 예배는 예수를 인간의 형체로 온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경외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수는 섬김을 받을 만한 존재로 취급되었으며 종종 놀랄 만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연계되었다. 이렇게 예수를 신으로 섬기는 것은 “1세기 추종자들의 화합에서 점진적으로, 뒤늦게 대두된 것이 아니라, 급작스럽고 급격히 분출되었으며 비교를 불허할 만큼 센 강도와 다양성을 통해 표출되었다.”[8] 그러므로 가장 초기의 기독론은 이미 가장 높은 수준의 고기독론이었다.”[9] 교부들이 달성한 바는 신학적 고찰을 통해 이 주제를 발전시킨 게 아니라 탐구를 용이하게 해 줄 핵심과 본질이라는 개념틀 속으로 이 주제를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1] Bart D. Ehrman, How Jesus Became God: The Exaltation of a Jewish Preacher from Galilee (News York: HarperOne, 2014), 353-354.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갈라파고스)

[2] C. F. D. Moule, The Origins of Chist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7), 2.

[3] C. K. Barre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An Introduction with Commentary and Notes on the Greek Text (2nd ed.; London: SPCK, 1978), 156.

[4] Ehrman, How Jesus Became God, 44.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갈라파고스)

[5] Martin Hengel, “Christology and New Testament Chronology: A Problem in the History of Earliest Christianity,” in Between Jesus and Paul (London: SCM, 1983), 31.

[6] Martin Hengel, The Son of God: The Origin of Christology and the History of Jewish-Hellenistic Religion (London: SCM, 1975), 4. 이것은 또한 G. B. Carid의 언급 (New Testament Theology [ed. L.D. Hurst: Oxford: Clarendon, 1994], 343)을 떠올리게 한다. “신약 최고의 기독론은 가장 초기의 기독론이기도 하다.”

[7] Larry Hurtado, One God, One Lord: Early Christian Devotion and Ancient Jewish Monotheism (2nd ed.; London: T & T Clark, 1998); 같은 저자, Lord Jesus Christ: Devotion to Jesus in Earliest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2003). (『주 예수 그리스도』 새물결플러스).

[8] Hurtado, Lord Jesus Christ, 2, 650 (『주 예수 그리스도』 새물결플러스)

[9] Richard Buckham, God Crucified: Monotheism and Christology in the New Testament (Carlisle, UK: Paternoster, 1988), vii-viii; repr, as Jesus and the God of Israel: “God Crucified” and Other Studies on the New Testament’s Christology of Divinity Identity (Milton Keynes, UK: Paternoster, 2008), ix-x.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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