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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발전”이 성경 계시보다 우월하다는 입장 (궤도추적 해석학 비판)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7. 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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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웨인그루뎀
역자: 조계광
서명: 복음주의 페미니즘 (Evangelical Feminism)

NICNT 시리지 중 마태복음으로 유명한 R.T France

자유주의로 향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 이른바 “궤도추적(trajectory) 해석학이라는 해석 방법에서 발견된다. “해석학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뜻한다. 궤도추적 해석학은 최종적인 귄위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서부터 그것이 앞으로 발전해 나갈 궤도의 마지막 단계에서 발견된다는 개념에 근거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이 견해는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그런 발전 과정의 최종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움직여 온 궤도나 방향을 따라 그것이 무엇을 향해 발전해 나갔는지를 추적함으로써 그들이 지향했지만 생각과 글로 미처 나타내지 못한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신약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궤도를 따라 발전해 나아가고자 했던 곳에 권위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궤도추적
해석학을 옹호하는 저자로는 영국 옥스퍼드에 위치한 위클리프홀 (옥스퍼드 대학교와 연계된 복음주의 학교이자 연구소)의 학장을 역임했고, 『새 국제역 (NIV) 성경 번역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널리 인정 받는 복음서 주석을 집필한 신약학자 프랜스와 애즈버리 신학교의 데이비드 톰슨이 있다. 프랜스는 『여성과 교회 사역』이라는 책에서 구약 성경과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지닌 남성 우월적인 특성을 지닌 체계이지만 예수님은 그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하셨고,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그 과정을 계속 이어나갔다고 주장하며, 우리도 그런 궤도를 따라 여성이 모든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복음서는 여성들에 대한 유대적인 편견과 그들을 지도자의 역할에서 배재한 관행을 완전하게 바꾸어 놓지 못했다. 그러나 복음서는 그런 변화가 확실하게 일어날 수 있는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 효과적인 해결책이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제자들은 배움이 더뎠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릴지라도 도화선에는 이미 불이 붙은 상태였다.”[1]

데이비드 톰슨도 1996년에 아래의 논문에서 그와 비슷한 입장을 제시했다.[2]

“하나님의 백성은 정경적인 대화의 방향을 의식하며 이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성경적인 대화 안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내용보다는 성경의 궤도가 향하는 방향과 성경에 이미 예고된 목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충실하게 존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그 당시의 정경적인 대화는 마지막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궤도는 이미 분명하게 평등주의적인 관계를 향해 맞춰져 있었다.”

프랜스와 톰슨 모두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교회의 지도자적 직분에 대한 여성들의 참여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프랜스가 말한대로 1세기의 상황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좀 더 온전하게 이루어 지는 것아직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 목적이 오늘날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이 더 이상 궁극적인 권위를 지니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권위를 지니는 것은 신약 성경이 나아갔을 뿐, 결코 도달하지 못한 방향에 관한 우리의 개념이다. 이것은 성경을 믿는 개신교 교회들의 역사적인 입장이 아니다. 교회의 중요한 신조들은 성경 외에 다른 것을 우리의 권위로 삼는 것을 막기 위해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제기된 개념이 아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이 권위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이런 궤도추적 해석학은 나중의 기준으로 이전의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프랜스는 (1) 이미 구약 성경에서 신약 성경에로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과, (2) 신약 성경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사도들이 이방인들의 온전한 교회 참여를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을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근거로 내세웠다.[4] 한 마디로 사실이 이러한데 신약 성경을 넘어서는 변화를 허용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논리다.

프랜스의 견해가 지닌 문제점은 신약 성경의 독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물론 신약 성경은 우리가 더 이상 옛 언약의 속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8: 6-13) 제사법과 음식법이 우리를 구속하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한다. 사도들이 이방인의 교회 참여를 서서히 이해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신약 성경 안에서 완료되었다. 신약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명령인 이방인들을 교회에서 배제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신약 성경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궤도를 추적할 필요는 없다.

물론 교회가 나중에 신약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은 삼위일체와 같은 교리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프랜스와 톰슨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교리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한 사람들은 항상 신약 성경을 궁극적인 권리로 삼았다. 그와는 달리 프랜스와 톰슨은 신약 성경을 궁극적인 권위로 삼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서여성의 사역에 제한을 둔 바울의 가르침과 모순되거나 그것을 부인하는 다른 목표를 추구했다. 삼위일체 교리는 바울이 신약 성경에서 가르친 것과 모순되거나 그것을 부인하는 견해에 근거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교의 명예 연구교수 하워드 마샬이 채택한 또 하나의 “궤도추적 해석학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는 평등주의를 옹호하는
『성경적인 남녀평등』이라는 책에서 결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논하면서 그런 입장을 취했다. 그는 바울이 1세기에는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했지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그 명령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바울이 결혼에 관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가 살던 세상에서는 오로지 가부장제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관계들에 관해 가르칠 때에 마찬가지로 자기 시대의 구조 안에서 사고했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었다. 따라서 이것을 모든 시대를 위한 가르침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5]

마샬은 또 이렇게 말했다.

동등한 상대끼리의 결혼이라는 개념이 신약 성경 안에서 처음 인지되기 시작했고, 바울이 자기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의 가르침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내다보는 것은 무리였다···1세기의 상황에서 복종은 적절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그 권위의 요소가 영구히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약 성경의 명령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프랜스가 갈라디아서 328절의 근본적인 동등성에서 자신의 원리를 발견한 것처럼 마샬도 상호적인 사랑이라는 신약 성경의 원리를 자신의 원리로 삼았고, 이 원리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라는 바울의 가르침보다 더 우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상호적인 사랑이 복종을 초월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프랜스, 톰슨, 마샬이 시도한 “궤도추적 해석학은 평등주의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도서인
『성경적인 남녀평등』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나타난다. 이 입장은 40년 전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채택한 논증이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하버드대 신학부 교수부장을 지낸 크리스터 스텐달은 1996년에 펴낸 책에서 여성의 성직 안수를 지지하면서 마샬의 주장과 매우 흡사한 주장을 펼쳤다.

“1세기에 구현된 것이 권위 있는 것의 기준이 된다면 미래에 구현될 요소들은 중립화되어 정체된 성경적인 견해안으로 흡수되고 말 것이다··· 1세기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기술이 자동적으로 모든 시대의 교회를 위한 기준으로 의도된, 권위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대로 하나님의 역사로서 전개되어 나갈 교회의 역사를 모두 설명해 줄 수단이 되지 못한다. 그런 것은 1세기를 재현하고픈 향수 어린 시도에 불과하다.”

성경에 대한 스텐달의 접근 방식(이것은 성경이 그 당시에 명령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거기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라는 태도)은 “궤도추적 해석학을 시도한 프랜스와 톰슨과 마샬이 취한 접근 방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했다. 결국 복음주의자들은 30년이 지난 후에 자유주의 신학의 논증을 채택한 셈이 되고 말았다.

스텐달과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한 또 하나의 사례는 베드로전서 31-7절을 논한 피터 데이비스의 논문이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신약 성경을 넘어선 발전의 궤도를 추적하지 않고, 그 대신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벧전 3:1)라는 베드로의 가르침의 목적이 주변 문화를 자극하지 말라는 데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가르침을 현대와 현대 이후의 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그의 본래 의도를 따르는 것이 되려면 1세기의 그리스-로마 사회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미덕을 지지하는 유일한 형태의 사회라고 가정해야 한다(물론 이것은 불가능한 가정이다)···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일방적인 복종이나 순종을 강조하는 해석은 베드로의 의도와 정반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해석은 문화와의 조화를 촉진하기보다는 혼인 관계를 맺은 그리스도인들과 문화의 충돌을 유도해 긴장을 강화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결국 퇴행적인 방식으로 문화를 훼손하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정확히 이런 결과를 피하려고 했다.[6]

데이비스는 베드로전서 31-6절을 고쳐 설명하면서 그의 말이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가 아니라 “아드내들아, 결혼 관계를 기꺼이 받아들여라를 의미한다고 주장했고,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라는 6절은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헌신했고, 자신의 문화 속에서 그에 맞게 처신했다로 바꿔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성경의 가르침이 단지 네 주위의 문화에서 좋게 생각되는 것을 따르라는 의미라면 굳이 성경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1] R. T. France, Women in the Church’s Ministry: A Test Case for Biblical Interpretation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95), 78.

[2] David L. Thompson, “Women, Men, Slaves, and the Bible: Hermeneutical Inquries”, Christian Scholar’s Review 25/3 (March 1996), 326-349, 톰슨의 논문, 특히 그의 해석학적 원리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입장을 좀 더 상세하게 다룬 내용을 살펴보려면 다음 자료를 참조하라. Wanye Grudem, “Asbury Professor Advocates Egalitarianism but Undermines Biblical Authority: A Critique of David Tompson’s ‘Trajectory’ Hermeneutics”, CBMW News, December 1996, 8-12. 다음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www.chmw.org.

[3] 프랜스와 톰슨이 일부 교회 지도자의 직분을 남자들에게만 국한시킨 성경 본문에 대한 상호보완주의적인 해석에 기본적으로 동의를 표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그런 본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지 않고, 단지 그것들이 더 이상 오늘날의 우리에게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복음주의 해석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유형인 듯하다. 다시 말해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에서는 여성이 교회를 가르치거나 다스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반면, 그런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1세기의 상황에서 여성이 교회를 다스리거나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 방법을 모색한다.

[4] France, Women in the Church’s Ministry, 17-19.

[5] I. Howard Marshall, “Mutual Love and Submission in Marriage: Colossians 3: 18-19 and Ephesians 5: 21-33”, Discovering Biblical Equality, ed. Ronald W. Pierce and Rebecca Merril Groothuis (Downers Grove, Ill. : InterVarsity, 2004), 204.

[6] Peter Davids, “A Silent Witness in Marriage: 1 Peter 3: 1-7”, Pierce and Groothuis, eds., Discovering Biblical Equality, 22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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