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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틀렸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7. 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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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웨인 그루뎀
저서: 복음주의 페미니즘(Evangelical Feminism)
역자: 조계광


내용 요약
프리랜서 저술가 리사 스칸조니와 낸시 하디스티는 『우리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획기적인 책을 한 권 펴냈다.[1] 그 다음 해에는 풀러신학교의 폴 주엣이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책을 펴냈다.[2] 두 책 모두 교회와 가정에서의 여성의 복종에 관한 바울 사도의 가르침이 랍비 교육을 받으면서 형성된 사고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바울 사도는 서신서를 쓰면서 그 영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랍비적 요소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완전한 평등을 강조한 그의 다른 가르침과 모순을 일으킨다. 그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 문제와 관련된 바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3] 이런 점에서 주엣은 현대 복음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정신적 아버지로 간주될 수 있다. 주엣은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인간』에서 디모데후서 2장에 나타나는 바울의 가르침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바울 사도는 옛 시대와 새 시대의 충돌이 빚어낸 산물이었다….그는 유대인이자 그리스도인이었다…여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유대적인 경험과 기독교적인 경험을 모두 반영한다…그는 유대적인 배경의 관점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었다 (고전 11: 9).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얻은 새로운 통찰력의 관점에서는 여성이 모든 점에서 남성과 동등하다고 믿었다이 두 관점은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의 논증을 만족스럽게 조화시킬 방법은 없다…바울은 전통적인 랍비적 이해를 전제로 삼았다….창세기 218, 19절에 대한 랍비적 이해가 과연 옳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영감을 받은 사도였던 바울이 특정한 대목에서 여성의 복종을 가르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이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성경의 신적 속성과 인간적인 속성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4]

기독교 개혁교회 목회자이자 교단 회의를 네 차례나 주관한 바 있는 클래런스 붐스머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그는 기독교 개혁교회 북미 총회의 총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바울이 창세기 2, 3장을 그런 식으로 활용한 것은 창세기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당시의 공통된 견해였기 때문에 바울도 당시의 청중을 위해 그런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 붐스머의 지론이었다. 토머스 슈라이너와 앨 월터스는 기독교 개혁교회에 소속된 저자가 바울이 구약 성경을 오용했다고 주장한 사실은 매우 놀랍다고 지적했다.

이런 입장은 디모데전서 211-15절이 틀렸다고 말함으로써 오늘날의 교회가 그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입장을 용인할 수 없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 발견되는 창세기 2장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일부다. 따라서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기록되었기 때문에 창세기를 그릇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바울이 디모데전서 2장을 기록하면서 오류를 저질렀다는 말은 자유주의로 향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다.

바울 사도가 틀렸다는 또 다른 주장이 데이비드 톰슨의 논증에서 발견된다. 톰슨은 바울이 창세기 2장을 잘못 해석했으며, 우리는 바울보다 창세기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톰슨에 따르면, 매우 드물지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구약 성경 본문에 대해 신약 성경 저자들의 해석과 다른 입장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경우 가운데 하나가 디모데전서 2장에 나타난 창세기 2장에 대한 바울의 해석이다.[5]

톰슨은 디모데전서 211-15절이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본문은 해석학적으로 특별히 복잡한 문제들을제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2장을 다시 살펴보며 바울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 그는 창세기 2장에 대한 바울의 해석을 아무런 탐구 없이 무작정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6] 그러고 나서 그는 창세기 2장의 기록을 우리 스스로 읽고 본문 자체의 관점에서이해해야 하며,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바울의 이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본문 자체의 관점에서 이해된 창조 기사가 바울이 시도했던 좀 더 제한적인 이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7]

톰슨의 주장은 우리를 위한 성경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바울이 창세기 2장을 인용한 것은 평등주의의 옹호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부터 남자가 결혼 관계에서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남자의 지도자적 위치는 하나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창조 목적의 일부다. 게다가 바울은 창세기 2장을 토대로 교회 안에서까지 남성의 지도자적 위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톰슨은 그런 논증의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제시했고, 여전히 평등주의를 지지했다. 그는 20세기의 해석자들답게, 기도하면서 극도로 신중을 기해 창세기 2장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창세기 2장을 본문 자체의 관점에서이해해야 한다. 그 본문을 충분히 잘 이해하면 우리의 이해에 근거해 바울의 해석을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창세기 2장을 바울의 해석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창세기를 해석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 된다. 톰슨의 논증은 우리의 해석으로 창세기 2장에 대한 바울의 해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여기에는 다른 구약 성경 본문에 대한 바울의 해석까지도 우리가 올바로 교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바울의 해석은 단지 그만의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분 자신의 해석이다. 신약 성경의 저자가 구약 성경을 해석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의 해석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1] Letha Scanzoni and Nancy Hardesty, All We’re Meant to Be: A Biblical Approach to Women’s Liberation (Waco, Tex.: Word, 1974).

[2] Paul King, Man as Male and Female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75).

[3] 스칸조니와 하디스티는 두 번째 창조 기사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비롯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을 토대로 여성의 복종을 강조하는 신학적인 도약은 랍비적인 전통에 따른 것이다 ··· 성경 본문은 그런 식의 사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Scanzoni and Hardesty, All We’re meant to be, 28). 이 말에 대한 각주에는 폴 주엣이 1973년에 풀러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강의록에서 발췌한 인용문이 길게 언급되어 있다. 주엣은 그 인용문에서 여성의 복종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서 신약 성경의 완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 지향했던 위대한 기독교적 비전을 만족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212-213).

[4] Jewett, Man as Male and Female, 112-113.

[5] David L. Tompson, “Women, Men, Slaves, and Bible: Hermeneutical Inquiry,” Christian Scholar’s Review 25/3 (March 1996); 326-349.

[6] Ibid., 346, 347.

[7] Ibid.,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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