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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그루뎀의 복음주의 페미니즘(Evangelical Feminism)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6. 3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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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복음주의 페미니즘(Evangelical Feminism)
저자: 웨인 그루뎀
역자: 조계광

 


서문 요약

1. 들어가는 말
흔히 “평등주의”로 일컬어지는 복음주의 페미니즘이 복음주의자들이 신학적 자유주의로 향하는 새로운 통로가 된 것이 우려스럽다. 여기에서 “신학적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온전한 진정성을 소유하고 있고, 우리의 삶 속에서 유일무이한 절대적 권위를 지닌 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상 체계를, 그리고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결혼생활이나 교회에서의 지도자적 위치가 남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운동을 각각 가리킨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 몇 가지 요점을 제시한다.
1.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처음 주장하고 나선 것은 자유주의 개신교 교단들이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이 일찍이 여성 성직 안수를 옹호하고, 결혼과 관련된 남성의 지도자적 역할을 거부하기 위해 사용했던 주장들 가운데 대부분을 채택했다.

2. 저명한 복음주의 페미니스트 저술가들 가운데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거나 훼손하는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고, 평등주의를 선호하는 지도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펴낸 책들을 지지하거나,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논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3.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의 독특성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거부할 뿐 아니라 더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로 일컫는 것에 찬성하기까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4. 이런 입장을 채택한 사람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다음 단계가 동성애의 도덕적인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임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5. 이 모든 경향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성경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효과적인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신학적 자유주의자의 기본원리다.

이러한 자유주위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전하기보다 문화적인 풍조를 쫓아 사람들의 인기를 끌만한 것을 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아왔다. 물론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화적인 압력에 굴복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관용을 강조하는 문화적 압력에 굴복해 “모든 종교는 제각기 동일한 하나님에게 이르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라고 주장하기는 매우 쉽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는 복음의 독특한 메시지가 상실되고, 교회들이 문화를 쫓아 자유주의로 기우는 결과가 나타난다.
Francis A. Schaeffer 역시 자신의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열쇠는 전적인 평등, 또는 좀 더 적절하게는 차별 없는 평등”이라는 개념에 있다. 우리 시대의 속된 풍조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 절대적이고 자율적인 자유를 열망하게 만들어 그 관계와 관련된 모든 한계와 형태, 특히 성경이 가르치는 한계를 거부하려는 욕망을 부추긴다. 사실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견해를 바꾸었다. 한 마디로 이것은 문화적 순응이다. 현대 정신과 성경의 가르침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에서 우리 시대의 속된 풍조에 순응하기 위해 직접적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성경을 왜곡하는 결과가 빚어졌다[1].

 

침례교회의 담임 목사 마크데버는 “다함께 복음을 위해”라는 영향력 있는 블로그에 아래의 글을 게재했다.

“이 입장(평등주의)이 실질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는 것이 나의 가장 현명하고도 냉철한 판단이다…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평등주의와 상호보완주의 문제가 성경을 문화에 순응시키려는 자들과 성경으로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자들을 구분하는 분수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복음에는 성의 문제보다 좀 더 핵심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평등주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려는 해석학적인 입장보다 성경의 권위를 더 신속하고, 철저하게 훼손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성경의 권위가 훼손되면 복음의 생명도 길지 못할 것이다.”[2]
물론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하는 논증, 곧 내가 이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논증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이다. 이런 논증 가운데 하나를 채택하면서도 일평생 자유주의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지도자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자유주의로 치우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가 채택한 논증에 함의된 논리를 따라 그것을 다른 신념들에까지 확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논증을 채택한 사람들 가운데는 그렇게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일찍이 프란시스 쉐퍼는, 처음에 교회를 교리적으로 그릇된 길로 이끄는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교리 가운데 나머지 것은 모두 놔둔 채 한 가지 중요한 요점만을 변경시킴으로써 한동안은 그러한 변화가 그다지 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를 잇는 그들의 추종자들과 제자들은 그 논증의 논리를 좀 더 확대시켜 훨씬 더 폭넓은 오류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나는 그런 현상이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통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점을 상세히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가 하는 역할이 큰 논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만일 전선에서 자신이 위치한 장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군인처럼 지켜야 할 한 가지를 포기하면 적들이 홍수처럼 밀고 들어와 교회의 큰 부분을 유린하게 될 커다란 구멍을 열어주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내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평등주의의 논증은 그런 식으로 계속 누적되면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확산된다……즉 어떤 지도자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신념 가운데 많은 것을 바꾸지 않더라도 그의 리더십을 따르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은 그가 사용하는 원리를 더욱 확대시켜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너무 극단적인 반응을 보여 성경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그런 태도를 취할 경우에는 과거에 너무나도 자주 그랬던 것처럼 성숙한 믿음과 재능을 지닌 경건한 여성들이 정당한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그릇된 율법주의로 치우치기 쉽다. 그런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자유주의만큼이나 쉽게 교회를 파괴할 수 있다.



 


[1] Francis A. Schaeffer, The Great Evangelical Disaster (Westchester, ILL: Crossway, 1984), 130, 134-135, 137.

[2] Mark Dever, “Undermining Tolerance of Egalitarianism,” May 31, 2006. http://blog.togetherforthe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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