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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에프렘의 낙원의 찬가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5. 7.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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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은 정말 읽기 힘든 책이다. 메마르고 성격 급한 사람들에겐 비추한다.

 

출판사: 한님성서 연구소(Hannim Biblical Institute)
역주: 이수민(오스트리아 빈 대학 유다학과 철학 박사)

에프렘은 약 306~373년 활동했던 성서학자다. 그는 어느 이방인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양친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에 따라 18세에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성 야고보를 수행하여 참석했다. 그는 성 바실리우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인데, 비록 동방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서방 교회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 중요성 때문에, 1920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에프렘의 저작에 대해 평가하기 전 시리아 교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최소 80년에 이르러 사도적 교회가 이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최소 2세기 말엽의 중동의 동방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 시리아어를 말하는 공동체의 성격에 대해 거의 말해주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들 교회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의 쿰란과 나그 함마디의 문서, 콜로뉴 마니 사본 등의 자료들을 통해 시리아 지역에 있었던 기독교 종파들이 “수행적 가르침과 실천”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마니교의 수행 운동’, ‘도마 행전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성적 욕구의 포기’ 같은 것이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증거로 4세기 초엽까지도 시리아 교회에 독신의 서약이 세례를 위한 전제였다는 자료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리아 교회의 유산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주는가? 개인적으로 “무절제와 방종에 대한 경고”를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교회에서는 정말 찾기 힘든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에서 열려있고, 개방적으로 변해가는 현대 교회와 구별된 모습을 시리아 교회가 보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시아 선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활동적인 모습도 인상 깊었다. 그리고 시리아 교회가 독자적으로 성장해왔음에도, 니케아 공의회의 신조를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에프렘이라는 신학자의 글과 표현 방식은 특이하다. 그리고 그가 가진 상상력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 역시 탁월해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감성적이고, 풍성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살았던 4세기경 시리아가 비교적 평안했기 때문일까? 요즘 같이 너무 바쁘고, 분주하고, 삭막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서술이기에, 한편으로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낙원에 대한 그의 표현이나 서술 방식들이 판타지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적이고, 문학가적인 모습을 보이는 에프렘이 이단들과는 싸울 때는 매우 저돌적이었다고 한다.시적이고 문학가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돌성도 있었다니? 에프렘은 양면적인 매력을 가진 신학자처럼 보인다. 그리고 당대에 기근이 발생했을 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설득해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였다는 그의 미담도 인상 깊었다. 에프렘 뿐 아니라 초기 시대에 살던 교부들 중 다재 다능한 인재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 다방면에서 탁월하지 않았다면 그 시대에서 사역자로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시대가 그들을 저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 에프렘의 가장 두드러진 신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상징신학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프렘으로 대표되는 상징신학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상징신학이 없어지고, 체계화되고 논리적인 개혁신학만 남으니, 지금 우리의 사고가 삭막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삼위일체 같은 교리를 재미없고 따분하게만 설명할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바로 상징신학의 상실이 이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에프렘의 글을 읽으면서 그에 비해 내가 상대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개혁신학도 이에 대한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분명 하나님을 닮은 어떤 요소가 담겨 있다는 그의 전제가 틀린 말은 아니다. 만약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초월성만 남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야기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초월성만 강조되면, 사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슬람의 하나님과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이런 면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상징 신학의 전제가 표현의 수려함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오늘날까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징 신학에는 단점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글들을 보면 너무 과해 보이는 부분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의 주해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쏟아진 백색의 물이 세례를 상징한다고 말하는데, “요즘에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성도가 받아들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볼 수 있는 사물의 표상이 볼 수 없는 영적 실체로 이끈다는 개념은 전적으로 필요하지만 너무 과하면 오히려 신자들에게 반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수민 역주의 말처럼 “항상 희미한 빛을 통하여 관조했고, 그 관조 속에서 자신이 본 신앙의 신비를 서서히 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렴풋하게나마 암시하고 감동시키며 열광시키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문맥이 강조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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