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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신학의 그리스도론 (감리교 신학 대학원 서창원 교수)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29. 20:51

본문

도서명: 그리스도론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흑인 신학의 대가 제임스콘 (출처: https://medium.com/christian-citizen/a-look-at-james-cone-and-black-theology-e4a3ae2c6938)


I.
시작하는 말
현대신학의 흐름 가운데 미국의 흑인신학(Black Theology)은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따른 흑인 그리스도론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1960년 중반에 흑인 인권운동이 연장되어 흑인신학이 태동되었다. 서구 중심적이며 백인들의 사고에 중심을 둔 기존 신학이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북미 대륙에서, 흑인 신학이 형성되어 온 배경과 역사적 과정을 이해할수록 흑인신학이 현대 신학에 던진 신학적 충격과 도전은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흑인 그리스도론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흑인신학의 발전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벤저민 메이스는 그의 저서
『흑인 문학 속에 나타난 흑인들의 하나님(The Negro’s God as Reflected in His Literature, 1938)』에서 당시까지 흑인들의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조사하여 세 가지 주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
흑인들은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편애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 핏줄로부터 모든 인류를 창조하셨다. 흑인들은 편파적인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2)
이러한 생각은 어쨌든 흑인들의 주장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정의의 편에 서 계시기 때문에 모든 일이 흑인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흑인들은 패배할 수 없다. 흑인들은 정의의 하나님을 주장하며 하나님은 흑인들이 끝내 승리를 거두도록 도우신다.
3)
젊은 작가들과 그중에서 특히 전후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회의와 좌절, 저항과 냉소적인 어조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무신론에 대한 표현들도 있다.

이같이 북미 사회에서 흑인들의 구심점이 되어 왔던 교회를 중심으로 꾸준한 흑인 의식에 의한 신앙적 자각과 각성이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왔다. 그러나 1960년 중반에 이르러 제임스 H. 콘이 그의 신학을 흑인신학이라 주장한 이후, 흑인들에게 비로소 그리스도교 복음을 혁명적 기대와 더불어 포괄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한편 디트로이트에서 목회하던 흑인 목사 앨버트 클리지(Alber Cleage)는 『흑인 메시아』 (The Black Messiah, 1968)를 출판하였다 [1].그는 여기서 예수를 혁명적인 흑인 지도자로 묘사하면서 예수는 억압자로부터 흑인들을 해방시키는 분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모든 흑인 교회에게 외쳐야 할 말이 있다. 당신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백인 예수를 넘어뜨려라. 당신들은 백인의 하나님을 잊어버려라.우리는 지금 흑인 메시아인 흑인 예수를 예배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라. 확실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그분은 흑인임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2]

이런 맥락에서 콘의 저서는 흑인신학에 새로운 전환적 계기가 된다. 콘의 주제는 흑인의 힘(Black Power)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장 급진적인 표현인 흑인의 힘은 그리스도교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20세기 미국의 상황에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중심 메시지라는 것이다. 흑인의 힘이란 흑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수단에 의해서라도 백인들의 억압으로부터 흑인들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백인들이 듣기 원하든 원치 않든 그리스도는 흑인이다. 이러한 모습은 백인사회에서는 너무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이처럼 콘은 오늘날 그리스도가 흑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제1세기에 예수가 유대인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콘은 흑인신학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Racism)를 파괴하기 위해 흑인들에게 필요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흑인들에게 흑인들의 품위와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창출할 목적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계시에 비추어 흑인들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

한편 아프리카의 알렌 보삭(Allen Boesak)은 미국 흑인 신학자들이 아프리카의 종교적 전통과 타협점을 시도하려는 것에 착안하였다. 미국 흑인들은 독특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미국인이며, 결코 아프리카는 과거가 아니라 미국 흑인 개개인의 미래의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보고 미국 흑인신학과 아프리카가 흑인신학과의 관계에 새로운 제안을 한다.

보삭은 『순진이여 안녕: 흑인신학과 흑인의 힘의 사회-윤리적 연구(Farewell to Innocence: A social-Ethical Study of Black Theology and Black Power, 1976)』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해방신학의 표현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몇몇 신학자들이 남아메리카 해방신학과 흑인신학의 사이를 완전히 분리하려는 태도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반대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이들 신학이 속해 있는 틀, 즉 해방신학의 틀 안에서 이러한 모든 상이한 표현들을 다루어야 한다.”

이것은 미국 흑인은 미국 흑인들의 경험과 다를지도 모르는 세계의 다른 지역의 흑인 신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억압받고 있는 여성, 남아메리카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대변하고 있는 제3세계 해방신학자들과 연대를 넓혀야 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II.
흑인신학의 내용적 성격
흑인신학의 특징으로 주장되는 것은 생존의 신학’ (Survival Theology)으로서 갖는 성격이다. 북미 흑인 공동체의 역사적 조건 때문에 흑인신학은 흑인들의 생존적 제약 조건을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인격과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신학이라는 것이다. 흑인 공동체의 역사적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1)
삶과 죽음의 긴장이다. 흑인들은 매일매일 생활하는 가운데서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절대적으로 열악한 조건 밑에서 육체적 생존에 대해 긴박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미 사회의 백인만(For White Only)’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격리에서 흑인들은 백인들의 린치의 대상이 되곤 한다. 흑인들은 비인격(non-person)으로 비하되고 모든 분규에서 백인 우월주의적 편견에 의한 희생의 되곤 한다. 그들의 생존적인 갈등은 매일매일의 삶과 죽음의 긴장을 경험하는 것이다.

2)
정체성의 위기감이다(identity crisis). 그 까닭은 흑인의 역사 문화 등이 가르쳐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적 전통과 자존심은 그들의 의식 가운데 자리 잡을 수가 없다. 흑인의식은 말살되고 있으며 흑인은 악과 범죄의 온상적인 인종으로 지칭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흑인들의 자존심과 긍지와 자기 정체감이 존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3)
백인들의 사회 정치적 힘에 대한 흑인들의 대처이다. 흑인신학은 흑인 공동체의 사회정치적 의식을 격려하고 고취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나치 사회에서 유대인들이 경험한 비정상적인 사회 정치권력에 의해 경제적 여건을 포함한 삶의 밑뿌리를 완전히 뽑히는 것 같은 상황에서처럼 북미 흑인들이 백인들의 사회 정치적 권력 앞에서 자결(Self-Determination)과 자기 긍정을 할 수 있도록 흑인신학인 이 혁명적 투쟁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사회 가운데서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부조리를 실감한다.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무의미와 부조리가 자리 잡는다. 흑인은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가치와 가능성이 박탈당하게 된다.

흑인신학은 위와 같은 흑인들의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조건을 염두에 두면서 이런 사회체제의 변혁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가능할 수 있는 근거는 역사 가운데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해방의 활동이다. 이러한 과제를 신학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추상적인 논리 전개라기보다는 감정적 또는 열정적인 언어의 진술에 의해서다.

동시에 신학의 진술은 실존적 모험(existential risk)을 수반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흑인신학은 열정적인 언어이며, 감정적 언어이어야 한다고 대담하게 주장한다. 신학적 언어는 정열적이며 확신 있는 언어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악의 세력을 저주하며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을 촉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이며 실존적인 정황에서 볼 때 흑인들은 이성적이며 사변적인 신학을 전개할 입장이 못 된다. 흑인신학은 사변적이며 현학적인 신학이 아니라 혁명적이며 전투적 정신의 신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흑인 그리스도의 문제점과 평가
1) 내적 비판 부족
흑인신학의 그리스도론의 위치가 흑인 공동체에 대한 내적 비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흑인 그리스도의 강점은 그것이 흑인들을 흑인이라는 사실 안에서 포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흑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만이 아니라 흑인들의 경험, 유산, 그리고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말해 준다. 그것은 흑인들이 자기들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신에 의해 존중되는 자들임을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흑인임은 단순히 특정한 색깔의 인간이 되거나, 특정한 종족 집단에 속하거나, 특정한 문화적·역사적 경험과 동일시되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해야 한다. 흑인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은 흑인 공동체 내의 억압의 실체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흑인 그리스도는 흑인이 흑인을 억압하는 실체를 지적하지 않는다. 흑인들은 백인들에 의해서만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의해서도 희생된다. 흑인 공동체와 교회는 자주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자체 안에서도 서로 나뉜다. 흑인들은 자기끼리 서로 나뉘어 있다.

2)
억압에 대한 일차원적 분석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흑인들은 성차별주의 계급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 살고 있다. 흑인 공동체에는 그들의 성, 경제적 형편, 성적 선호도 때문에 고난 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를 흑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가 백인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형태의 억압을 없애는 데도 관심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흑인 그리스도는 백인의 인종차별 이외의 어떤 차별에도 둔감한 것으로 보인다.

3)
흑인 그리스도가 흑인 교회에 영향을 끼치는 데 실패하였다. 비록 콘을 중심한 흑인 그리스도가 흑인 신앙에서 나왔지만, 그것은 흑인 교회에 심각하게 파고들지 못했다. 게리로드 월모어는 흑인신학이 흑인 목사들과 교회를 움직이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흑인 신학의 과격한 메시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믿음을 통한 치유와 자기 성취에 대한 좀 더 보수적인 메시지를 조화시키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즉 흑인신학에 있는 정치적인 메시지뿐 아니라 목양적인 것을 창의적으로 접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접촉점이 흑인 그리스도론에서는 빈약하다.

 


[1] 서창원 교수는 Albert Cleage의 입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의 입장은 가장 과격하며 도발적인 흑인신학이다. 다글라스의 형가에 의하면 흑인 민족주의와 그리스도교를 합쳐 놓은 견해로 보고 있다.”

[2] Albert Cleage, The Black Messiah (New York : Sheed & Wordk, 1968), 98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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