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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너의 초월적 그리스도론, 김성원 (나사렛 대학교 교수)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26.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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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 그리스도론
발제자: 김성원 (나사렛 대학교 교수)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출처: 카톨릭 평화신문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61344&path=201307)

 

칼라너의 초월적 그리스도론
I. 라너(Karl Rahner)의 신학방법론
라너의 그리스도론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은 초월적 그리스도론이다.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신학방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의 신학방법은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관념론적인 초월적 철학을 심도 있게 주장한 칸트의 철학에 적지 않는 영향을 받았다. 그는 칸트의 초월적 인식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라너의 초월적 그리스도론이 칸트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카톨릭
신학 전통에 있는 라너는 칸트(post-Kantian)의 눈으로 아퀴나스를 읽으면서 카톨릭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진전된 신학적 접근 방법을 터득하였다. 아퀴나스는 지성적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 즉 신과 같은 것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였다. 라너가 활용한 방법은 아퀴나스의 수월성[1] 방법이다.

두 번째로 라너가 관심을 가졌던 철학은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다. 라너는 하이데거와 유사한 모델을 가지면서도 독특한 초월적 인간 실존을 주장하였다. 라너가 초월적 그리스도론의 배경이 되는 신의 자기소통의 계시론은 신의 뜻이 세상에 편재한다는 이론이다.

라너에게 있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영은 일차적으로는 세상에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과 구별된 독특한 것이다.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과 구별되는 것은 초월적이며 무한한 것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의 세계에서 형이상학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라너는 하이데거의 선이해(pre-apprehension)라는 개념을 활용해서 세상과 구별하는 원리로 적용하였다. 선이해는 무한성을 향해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조건적 요소라고 생각하였다. 선이해는 인간이 어떤 사실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차원 이전에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것으로서 초월적인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신비스러운 신적인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세상의 다른 주체들이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라너는 초월적인 방법을 자신의 신학에 적용해서 진전된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실존 이해와 칼 라너의 실존 이해의 차이

하이데거: 인간의 실존은 일시적인 세상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라너: 인간을 죽음과 무를 향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선이해를 통해서 초월적이고 무한한 세계로 간다


칼라너가
이렇게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한 것은 세상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기존의 그리스도론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보편화되지 못하기 때문이 이런 시도를 한 것이다. 라너가 사용한 변증법은 일체적 역동성과 개념적 구별성의 변증 관계이다.신과 신의 피조물 사이에서 일체적 역동성이 있으면서도 개념적으로 구별이 되는 변증법적 관계를 사용한 것이다. 라너의 일체적 역동성과 개념적 구별성의 변증법적 관계가 라너의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하게 한 방법론적 기반이다. 이러한 신학 방법들을 배경으로 라너는 독특한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하였다. 초월적 그리스도론을 다루기 위해서 먼저 이해해야 할 내용은 신의 자기 소통이기 때문에 신의 자기 소통과 그리스도론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II.
신의 자기 소통과 그리스도론
신의 자기 소통은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은총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의사소통은 경륜적 구원을 이루는 내재적인 삼위일체의 신비적은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라너의 그리스도론을 다루면서 먼저 논의되어야 할 사항은 바로 신의 자기소통과 은총에 관한 것들이다. 라너의 초월적 신학의 특성은 신의 자기소통 원리를 통한 인간의 초월성 경험에 관한 것이지, 신의 초월성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한 신학은 아니다. 인간의 초월성 경험은 선이해적인 것이다.

신의 소통을 떠나서는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신의 소통은 인간과 세상과 모든 것에 원인과 목적이 되는 것에 내재되어 있다. 라너는 신의 소통에 대하여 네 단계를 언급하고 있다. 1) 우주의 기원 2) 미래 역사 3) 초월 초청 4) 수용 지식, 사랑의 관계에서 신의 소통을 이해할 수 있다. 신의 소통을 경험하는 것은 즉각적 경험으로서 세상의 역사와 사물의 중보적 재료들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점진적 깨달음이나 성숙을 통해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신비적인 즉각적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라너가 이러한 접근 방법을 활용한 것은 신의 초월성과 절대적 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피조물이 제한적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신과 사물 사이에는 간격이 있지만, 인간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죄를 범한 인간 실존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있으며, 용서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죄를 지은 인간의 용서는 신과 소통을 통해서 인식되는 것이다. 신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신의 은총은 사랑과 용서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해방될 수 없으며, 죄책감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직 신의 은총을 통해서 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III.
-인간 그리스도
초월적 그리스도론은 신의 피조물에 내재되어 있는 신 자신의 모습이 인간과 소통이 되면서 경험될 수 있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해석이다. 라너가 언급한 신-인간 그리스도론은 존재론적 그리스도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의 본성과 인격과 신-인간성을 나타내는 그리스도론적 이해이다. -인간 그리스도론은 성육신 사건이 신-인간의 핵심적인 것으로서 자신을 비워 새로운 창조를 이루는 것이다. 우주의 시작으로서 신이 자신을 비우고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초자연적 영역이다.

그런데 라너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부활은 제자들의 신앙 속에 살아 있는 독특한 사건으로 이해했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신학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특이한 사실이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은 신의 자기 소통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너는 신의 자기 소통이 결국 피조물 속에서 은총으로 그리고 역사 속에 성육신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말했다. 신은 자신을 내주는 것이고,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피조물 안에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라너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신-인간 그리스도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 그리스도는 구원자요, 중보자이며, 예언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다.

신의 절대적인 자기 소통은 세상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는 언어와 사물과 인간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구속사란 바로 신의 자기 소통이 역사적 매체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의 역사이며, 신의 초월성의 사건으로 되어 있는 역사를 구속사라고 보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세속사와 구속사는 차이성이 있지만, 결국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구속사와 세속사는 같은 것은 아니지만 공존하는 것이다.

IV.
초월적 그리스도
라너는 신의 피조물도 신과 소통을 하는 일체성을 가졌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가 신의 피조물들에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질료적 요소가 다른 피조물들에 내재되어 있는 영적인 것과 교통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적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질료적 요소는 영적인 차원에서 세상으로 가게 하는 조건적 역할을 한다. 질료적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으로 되는 것이 바로 초월적인 것이다. 특히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질료에서 영적인 차원으로 되는 것이 개인적 자기-초월이 되는 것이다.

초월적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구원은 인간 실존의 복합적인 준비과정을 얻는 것으로 언급된다. 영적 은총에 반응하고, 구원에 이르는 준비적 단계는 이웃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하며, 죽음을 향한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초월적 경험의 선험적 구조는 순수한 상태이며, 각 사람의 삶 속에 즉각적 현존으로 경험할 수 있는 초월적 인식의 기반영역이다. 라너가 이해한 인간은 세상과 신 사이의 중간 위치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시간과 영원 그리고 초월성과 역사 사이에서 인간은 역동적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초월적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은 자기현실화(Self Realization)의 과정을 거친다. 인간이 된다는 사실은 자신이 삶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양심적이고 자유로운 관계를 스스로 갖는 것이다. 즉 라너에게 있어서 초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선험적 마음, 이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자연스럽게 자기 현실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의 타당성의 결정도 결국 초월적 이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보았다. 라너는 초월적 이성에 의해서 경험되고 해석되고 결정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접근하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초월적 그리스도론은 구체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선험적으로작용한다고 보았다.

V.
익명의 그리스도인
라너의 신학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논란이 된 것은 바로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이다. 라너가 이 신학적 전제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을 향한 신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믿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도 인간은 초월적인 실존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교회의 공식적인 회원이 되지 않고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그래서 칼 라너는 신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 국한되지 않고 타 종교에서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에게 그리스도가 자연적으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를 발견하고 믿는 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 즉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신의 자기 소통과 은총론에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신과 다이렉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역시 그리스도가 신의 자기 소통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정점에 해당하는 계시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와 교통 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존재 목적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의 구원론은 마치 신인 협동론을 보는 것 같다. 이는 동방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의 구원론은 반개인주의적인 구원론이다. 그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개인과 세상과 우주가 함께 신과 소통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사건이 되어 버린다.



 


[1] 1) 아퀴나스는 신의 인식에 도움이 되는 형이상학적 이해의 가능성을 세 가지 차원에서 제시하였다. 1) 수월성이다. 신의 속성은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초월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수월성(excess)이라는 개념을 유비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영원성, 완전성, 무한성, 전능성과 같은 신의 속성은 수월성의 원리를 유비적으로 활용해서 인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은 비교를 통해서 가능하다.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등의 관계를 통해서, 상대적인 것을 통해서 절대적인 것을 인식할 수 있다. 3) 부정의 방법이다. 신의 속성이 일시적이지 않고, 제한적이지 않고, 불완전하지 않다는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영역을 신적인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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