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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신학에서의 그리스도론 (바르트, 칼라너, 몰트만, 판넨베르크, 브루너)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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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 그리스도론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계시신학에서의 그리스도론 (서울 중앙 신학교 교수 황돈형)
- 근대 문화개신교주의 이후부터 최근의 종말론적 신학까지 -

카톨릭사상의 현대화를 이룬 칼라너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4282076)


I.
들어가는 글
그리스도교는 인류 가운데 등장하는 다양한 종교 중의 하나로서 인간의 종교성이 지역에 따른 다양한 역사적 전개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하나의 종교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설명한 것이 근대 슐라이어마허 이래 문화개신교주의의 입장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자신을 하나의 역사적 종교로서 파악하고 시대적인 문화와 이념적 틀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근거와 연관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정반대로 사회와 세계는 세상의 의미의 근거를 더는 종교적인 것에서 찾지 않는 비종교화와 기계문명으로 특징화되는 세속화를 추구해왔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세상을 위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역사적 삶의 허무와 역사적 모순에 동참하며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 부활 안에서 무엇으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역사의 악과 절망, 삶의 무의미를 이겨내며 모든 이를 위한 새로운 희망과 사랑이 주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장 문화적이라고 자부하였던 유럽에서 1,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는 비극적 모순 속에서 인간 자신이 얼마나 위험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고, 사회적 집단이 국가와 미래를 위해 세우는 계획이 얼마나 기만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에게 대하여 더는 희망과 궁극적인 가치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다시금 그리스도교가 인간과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보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지신 부활의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인간과 세상을 위해 고난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구원을 이루시는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찾고자 하였던 계시 신학의 근본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시를 중시하는 새로운 신학적 사고는 변증법적 신학으로부터 종말론적 신학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 세상에 대한 참다운 희망의 근거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요소로 강조하는 것이다.

II.
변증법적 신학에서의 그리스도론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동질성을 근거로 인간학적 근거에서 신학을 시작하였던 근대 문화개신교주의를 벗어나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차이를 출발점으로 삼는 변증법적 신학 운동은 무엇보다도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로마서 주석은 근대 문화개신교주의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고 새로운 신학적 사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또한 1922년에 수정되어져 발표된 로마서 주석 2판은 또한 그전의 사고방식과 차이를 나타내면서 소위 변증법적 신학을 가능하게 했다.

1.
바르트의 변증법적 계시의 그리스도론
바라트는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에게서 찾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찾았다. 이 말은 신학을 시작할 수 있는 두 가지 출발점으로서 인간과 하나님이 있는데 그중에서 단지 하나님만을 선택하였다는 말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신학이 추구하는 하나님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다. 이와 정반대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구원을 받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에게 있어서 신학은 인간의 이성이나 능력을 통해서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가운데 인간을 위해서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기 바르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중요한 면은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유한한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가운데 해소되어 이제 인간이 역사적 경험으로서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세상과 유사한 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유기하고 심판받도록 알려진 인간을 속량 하며 선택하시는 사건은 영원의 차원이 유한한 시간적 차원과의 절대적 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이루어야 할 무엇이 아닌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종말론적 구원의 사건을 이루신 분이다. 그분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모든 인간의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건으로서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종말론적 현실을 계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은 이미 인간적인 가능성을 넘어서는 사건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이루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인간에게 허락되어진 불가능한 가능성을 지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르트는 위로부터의 계시적 그리스도론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신 분으로서 인간과 다른 절대적 차이 가운데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인 우리의 모습과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동시적으로 만나게 되며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인간과 우리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드러내시는 계시의 하나님을 동시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바르트가 강조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의미에서든지 하나님과 인간을 연관시킬 수 있는 존재의 유비 가운데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칼케돈의 그리스도론적 입장을 신성과 이성의 변증법적 상관성 가운데 파악되는 계시적 해설로 재해석했다.

2.
브루너의 인격적 만남의 그리스도론
브루너 역시 문화개신교주의가 신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인간적으로 보려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이나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서 파악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종교들은 신적인 원 계시도 포함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인간의 죄성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모든 종교는 하나님과의 근원적인 연관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적인 것과 혼돈되며 서로 혼합적인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적 형태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신적인 것의 유한화, 세상화, 비인격화를 거쳐서 우상적인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브루너 역시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그 자신을 통해서만 그분의 인격과 의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브루너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종교적 경험이나 이성적 판단을 통해서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비교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종교적 요구 이상의 것으로서 모든 종교적 현상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완성을 뜻한다.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비적 종교의 경험의 형태나 구약의 예언자나 제사 종교적 경험의 형태에서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에 대해 이차적으로 주어진 어떤 해석학적인 경험의 산물이나 전달 방식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과의 직접적으로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브루너는 계시의 역사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밝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아버지 없이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태어났다고 보여지는 점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현설적인 존재로 볼 수 있게 하며 동시에 예수의 역사적 실재를 신화적으로 비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그는 이런 식으로 성육신 이론을 비판 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무죄하시다는 것은 결코 동정녀 탄생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오히려 마리아 숭배 사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정통적인 교리로서 받아들여진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을 비판적으로 보았던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창조된 세계의 현실 속에서 모든 인간과 일치하는 삶의 과정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브루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 진리로서의 하나님의 자기 전달로 파악하였고,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만남을 통해서 생긴 이 사건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인격적 만남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고백하였던 칼케돈 신조를 비록 그것이 인격적인 만남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 실체적인 정적 방식으로 서술되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다.

III.
삼위일체적 계시의 현실로서 그리스도
1.
칼라너의 실체적 일치의 그리스도론
라너의 공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근대 카톨릭 사상의 핵심적 위치를 이루고 있던 신스콜라주의의 입장을 넘어 카톨릭 사상의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적 특성을 초자연적 신존주의로 정의하였다. 라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을 이루는 근원적인 분으로 인간의 실존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교통 하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하나님은 절대적 신비로서 인간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분이 아니고 인간의 모든 의식적 작용이 이루어지는 지평으로서 무엇보다도 더 가까이 인간을 만나시는 분이다.

라너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성은 그의 사역보다도 우선적으로 인격에서 찾아진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가장 깊은 내적 본질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형상화하시고 내적으로 규정 지음으로써 인간의 존재와 연관되어 계시고 항상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도록 만드셨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본질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존재의 완전히 하나 된 인격적 실현체가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삶의 근본적 의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과 하나 되는 인간 창조의 근원성과 목적성을 실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실재가 지니는 특성을 통해서 모든 인간이 현실 가운데 신비적으로 추구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즉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을 이루시고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에 참여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라너의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시는 것이 단지 구속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을 지라도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근원적 의미를 완성하는 것으로서 성육신의 사건이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라너에게 있어서 삼위일체 상호 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서로의 분명한 실체적 존재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러한 성부와 성자 성령의 존재는 상징의 존재론을 통해서 설명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주체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상징적이라는 것 이상으로 그 주체가 본질적으로 그 행위나 표현을 통해서 상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 존재는 언제나 표현의 행위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지 이러한 행위 뒤에서 정체적인 존재로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자는 성부의 자기표현이 되시고, 성자는 아버지의 자기 발현이 되신다. 이제 성자는 성부의 자기표현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라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가장 현실적으로 인간적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하나님 자신의 표현으로서 계시적 사건이시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VI.
종말론적 계시에서 알려진 그리스도
1.
몰트만의 메시아적 그리스도론
몰트만은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부활을 통해서 세상의 죄와 악을 극복하는 희망의 근거를 찾았다. 그의 신학의 핵심이 종말론의 재발견이었다면 그 종말론은 그리스도론적으로 기초된 것이다. 이 가운데 그의 신학적 사고는 역사의 종말론적 희망의 추구에서부터 이스라엘의 메시아적 관점에서 그리스도론을 다루어 나간다. 그리하여 전자가 십자가의 사건으로부터 드러나는 삼위일체론적 하나님의 계시로서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진리를 강조하였다면, 이후로 영-그리스도를 강조하는 방식 가운데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전통적으로 주어진 신성과 인성의 그리스도론의 구성적 요소 대신에 새로운 길-그리스도론으로서 메시아적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깊은 고난과 죄와 죽음의 현실 가운데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미래를 계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사건이 아니며 또한 인성과 신성 사이의 사건만도 아닌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적 존재가 인간의 죄와 악의 현실 가운데 자신의 사랑과 구원을 이루는 계시적 사건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는 인간을 위해 버림받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계시된다.

여기서 특징적은 것은 나사렛 예수가 단지 신적인 구원을 나타내는 신성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역사적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세상에 개방시키며 (칭의) 또한 세상을 하나님에게 개방시키며 (성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미래 (종말론적 구원)을 가져오는 분으로서 종말론적 존재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또한 그와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희생적 의도와 함께 발생되어진 사랑의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참된 연합으로서 하나 되시는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사건으로서 모든 버림받은 인간과 세계를 품고 그 사랑 안에서 다시금 하나님과 연관되는 새로운 생명의 종말론적 구원을 세계에 가져오시는 사건으로 본다.

이와 같이 몰트만은 그리스도를 단지 신성과 인성 사이의 연합이 어떻게 한 인격으로서 이해되는가에 대한 물음보다도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총체적인 인격적 사실을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을 위하여 열린 종말론적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몰트만이 설명한 그리스도의 삼중직

공생애의 시작으로부터 골고다까지 -> 메시아적 사역

묵시문학적인 연합 가운데 고난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 제사장 직무

종말론 적이고 우주론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왕적 임무


몰트만에게 있어서 예수의 사역은 묵시문학적인 차원의 죽음을 드러내고 더욱이 종말론적 부활의 계시 가운데 인간과 세계 자연 모두를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하며 아직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할 재림하시는 분으로 설명되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를 신적 본성의 실체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삼위일체적 관계들로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에서 기인하고 이러한 이해는 다시금 그의 서적 Der Geist des Lebens (1991)에서 성령 중심의 그리스도론을 서술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즉 나사렛 예수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활동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그의 십자가의 길은 성령의 인도 가운데 가능한 것이며 또한 성령의 능력 가운데 부활한 자로서 파악된 것이다.

2.
판넨베르크의 보편적 그리스도론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중심을 온 세상과 관련된 하나님의 존재의 편재성과 보편성으로부터 세우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승을 통한 해석학적 과정을 거쳐서 보편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 의식의 문제를 형이상적 과제와 연관을 이루어감으로써 세상의 모든 학문과의 관련성에서 이성적인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강조하였다. 즉 예수의 신성을 전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 예수를 통해서 그의 신성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이것들 가운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신성을 드러내는 사건이 바로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의 마지막을 앞당기는 선취적 사건으로서 역사적 예수의 역사적 삶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순종의 행위로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성육신이 진리였음이 주장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에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자기비판적 수정을 거친다. 그는 성육신의 진리를 나타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성육신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일 뿐이지 성육신의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그의 신성을 나사렛 에수의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메시지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금 이 메시지에 대한 철저한 긍정을 부활 사건에서 찾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부활의 사건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된다.그리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그의 인간성이 모든 인간의 운명적 완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에서 찾아진다. 즉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에게 개방적으로 연관되어 있단 말이다.

아버지의 신성은 아들을 통해서 확고해지고 아들은 자신의 인간적 삶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신성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확고하게 계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버지의 신성의 주권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취되고 이것은 성령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V.
나가는 글
오늘날 다시금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 중심적 관점에서 말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초월적 가능성을 위한 상징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계시 신학적 그리스도론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고 있는 문화적이고 과학적인 세계상들을 상대화 시킨다. 그리고 세상의 가장 깊은 고난과 부정적 상황 가운데서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며 하나님과 화해되고 인간을 위한 존재가 되도록 부른다. 따라서 계시 신학의 그리스도론의 초점은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역사적 삶에서 구원을 이루시고 그 가운데 온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이끄시는 그리스도 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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