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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 칼빈의 그리스도론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19. 01:41

본문

종교개혁자 칼빈의 그리스도론
: 그리스도론
출판사: 한국조직신학회
발제자: 최윤배

출처: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8


I.
서론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리스도론에 의해 넘어서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한다. 봥델에 의하면, 칼빈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론에 있다. 그리스도론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칼빈의 다른 사상에 대한 연구보다 상대적으로 열약한 편이다. 그러나 칼빈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전문적인 국내 학자의 연구는 칼빈의 그리스도론 전반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칼빈의 그리스도론의 특정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칼빈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물은 거의 없는 현실이다. 본고가 교과서적인 성격을 지니기는 하지만, 칼빈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로서 그 기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II.
구속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의 기독교강요는 삼위일체론의 틀 속에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와 섭리 사역을 성육신하신 중보자가(sarkos logos) 하시는 구속 사역과 밀접하게 결부시키면서도 구별하고 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자신을 구속주로 보여주셨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이중 지식이 생긴다.”

1.
율법 속에 나타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1) 율법의 기능
첫째 기능은 죄 인식을 갖게 하고, 정죄하는 기능, 둘째 기능은 죄를 억제하여 사회적, 도덕적 의를 가능케 하는 기능, 셋째 기능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기능인 율법의 제3 기능이다. 첫째와 둘째 기능의 경우, 율법은 초등교사의 역할을 한다. 율법의 세 번째 기능은 이미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마음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신자들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면 율법은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가? 칼빈에 의하면 구약시대에 주어진 율법은 구약의 백성을 율법 아래 가두어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소망을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다. 율법에도 그리스도가 이미 약속되었다. 칼빈은 제의나 의식법뿐 아니라, 도덕법도 그리스도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리스도는 율법의 최고의 해석자이시다. “우리가 율법의 의미가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어떤 새로운 해석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최고의 율법의 해석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2)
율법과 복음의 관계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율법 하의 유대인들에게도 알려지셨으나, 오직 복음 안에서 더 상세하고, 더 분명하게 계시되었다. “율법은 경건자들을 그리스도가 오시리라는 기대 가운데 살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리스도 강림 시에 그들은 더 많은 광명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그리스도의 강림 이전에 죽은 경건한 자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빛나는 지식과 광명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와 우리의 처지를 비교함으로써, 그들이 희미한 윤곽을 잠깐 엿본 그 신비들이 우리에게는 밝히 나타났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복음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해석할 때는 하나님이 옛날 족장들에게 베푸신 자비와 아버지 같은 호의에 대한 증언들도 복음에 포함이 된다. 그러나 더 높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은총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칼빈에 의하면, 그의 당시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행위의 공로와 결부시키고, 복음은 전가된 의에 결부시킴으로써,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범했다. 칼빈에 의하면,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내용적으로 상대적 차이만이 존재한다. “율법 전체를 볼 때에 복음은 계시의 명료도가 율법과 다를 뿐이다.”

3)
구약과 신약의 관계
칼빈은 구약과 신약을 상호 완전히 동일시하거나 완전히 분리시키지 않고, 상호 구별하여, 상호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다 같이 주장했다. 따라서 칼빈은 구약을 지나치게 무시하여 구약을 신약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하는 세르베투스와 제세례파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구약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유대주의적이고도 율법주의적인 잘못을 범한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면서 우선 구약과 신약 상호 간의 유사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나중에 상호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칼빈에게 있어서 구약과 신약은 내용상 그리고 본질상 동일하고, 방법상 그리고 정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두 가지 점을 다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족장들과 맺어진 언약과 우리와 맺은 언약은 그 실질과 실상이 매우 같기 때문에, 실지는 이 둘이 하나다. 다만 처리방법이 다르다. 그는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을 세 가지로, 그리고 차이점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칼빈이 시도한 구약과 신약 사이의 비교는 사실상 그 내용보다 구원의 경륜 속에 있는 그들의 연대기적 위치에 따른 차이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신구약은 모두 동일한 말씀을 증거 한다. 양자가 모두 다 같이 한편으로는 이런 방법으로, 다른 편으로는 저런 방법으로 예수를 선포한다.

구약과 신약의 유사성 세 가지
1) 제세례파와
세르베투스가 주장하듯이 구약의 유대인들에게는 육적인 번영과 행복만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셨을 때, 그들에게도 영생의 소망을 주셨고, 신탁과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들의 선택을 보증하시고 확인하셨다.

2)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맺으신 언약은 그들 자신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구약의 유대인들도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며,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리라고 믿었다. 구약의 유대인들도 동일한 믿음을 가졌고, 동일한 성령과 동일한 그리스도를 통해 동일한 영생이 약속되었다.

 

약과 신약의 차이점 다섯 가지
1) 구약은 영적 축복을 현세적 축복으로 표현했다.
2)
구약시대에는 형상과 의식으로 그리스도를 예 표했다.
3) 구약은 문자적이요, 신약은 영적이다.
4)
구약은 노예 상태의 언약, 신약은 자유의 언약이다.
5)
구약은 한 민족과 관계되었고, 신약은 모든 민족과 관계되었다.

 

성육신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구속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차이는 절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상대적이며, 비교급적인 차이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의 차이이다.

III.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중보자를 택하시기로 결의 또는 작성하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이 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친근하게 세우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중보자의 역할을 예수가 하심으로 인간에게 본질상 그의 것을 은혜로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 이 과정에서 두 본성의 위격적 연합이 일어났는데, 두 본성은 서로 손상되지 않았다.

IV.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1.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
1) 선지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아버지의 은혜를 선포하는 전령과 증인이 되시는 것을 본다.

2)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왕직의 특성은, 영적, 영원성, 교회론적 특성이 있다. 이 왕직의 영원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1) 교회 전체에 관한 것 2) 각 그리스도인에 관한 것이다.

한편 칼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르는 것과 같으며 이 대리는, 즉 하나님의 통치권을 전적으로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왕권은 최후 심판까지 이어진다. 칼빈에 의하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목적과 유익은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는 일이다.

2.
겸비 상태와 고양 상태에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1)
겸비 상태
그리스도께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 이 고백은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이 바로 이 의인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도둑으로 가난 받아 죽었거나 폭도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하여 죽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므로 인간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없다. 빌라도는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해 그를 의인으로 선언한다.

속건제란 어떤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다른 동물에게 전가하여 그 동물을 그 사람의 죄 대신에 죽게 하는 속죄 예식이다. 이를테면 그 제물 위에 사람의 오점과 벌을 전가시켜서 그 죄를 대신 갚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는 그 저주에 압도되어 쓰러졌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는 저주를 담당하시면서 그 저주의 힘을 전적으로 꺾고 부수어 버리셨다. 때문에 그리스도가 받으신 정죄는 바로 인간을 무죄 방면시킬 수 있었다.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는 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패를 씻어 버리는 목욕 대야가 되었다.

칼빈이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으로부터 우리는 그의 속죄론이 상당 부분 안셀름의 만족설을 지지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형벌을 강조하는 형벌 대속설임을 알 수 있다.

2)
고양 상태에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우리의 믿음이 죽음을 이기는 것도 오직 그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1)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인한 부활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겸비 사역만 강조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고난만 강조하게 됨으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즉 겸비 사역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즉 고양 사역만을 강조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이 시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혁시키는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칼빈 시대의 서양 교회

칼빈 시대의 동방 교회

그리스도의 겸비 사역만 강조 -> 부활의 기쁨이 생략

그리스도의 고양 사역만 강조 -> 고난에 동참 못함


그리스도께서는 비천한 지상 생활과 십자가의 수치를 벗어 버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영광과 권능을 더욱 완전히 나타내시기 시작했다. 그분은 현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이는 하늘 심판대에서 주재하고 계시는 왕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천지에 대한 모든 주권을 받으시고, 위임된 정권을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리라고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바로 그가, 즉 우리의 구속주가 우리를 심판하는 심판대에 계시리라는 것은 절대 평범한 보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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