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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리의 그리스도론 정리 (김영선 교수)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21. 03:15

본문

책 이름: 그리스도론(Christology)

웨슬리의 그리스도론
발제자: 김영선 (협성대학교)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A1%B4_%EC%9B%A8%EC%8A%AC%EB%A6%AC


I.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에 대한 물음은 초기 교회 시대의 물음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물리칠 수 없는 물음으로 남아있다.

II.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관계
구원과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웨슬리의 성화론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다. 웨슬리가 말하는 성화는 신자가 매 순간마다 주를 의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에서만 가능하다. 성화는 그리스도와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III.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의 결합에 대한 웨슬리의 입장은 1563년에 채택된 영국교회의 39개조 종교 강령의 제2조를 미감리교회에 그대로 적용한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웨슬리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는 요한복음 1030절을 주해하면서 예수와 아버지는 의지의 일치만이 아니라, 기능에 따라 합일된 본성으로서 예수는 본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일치하며, 예수와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복수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중 어느 쪽을 강조했느냐에 따라서 신학적 색깔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웨슬리는 신성의 역할을 더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의 직무를 수행하셨을 때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신성에 속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인성보다 신성에 대한 웨슬리의 강조는 조화와 균형이란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중보자로서 신성을 중요시하면 속죄 주로서 그리스도의 인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신성 > 인성, 중보자 > 속죄주, 신성을 강조하면 그리스도의 인성 약화, 이는 속죄 주로서의 이미지 약화된다.


물론 웨슬리가 인성을 덜 강조한다고 해서 그의 기독론이 가현설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인성이 배제되면 속죄도 구원도 성화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웨슬리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모든 속성을 따라 사신 그분을 성화의 표준과 모델로 잡았다.

그의 성화론을 보면 그는 알렉산드리아보다 안디옥 형태의 그리스도론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안디옥의 네스토리우스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형의 그리스도론에서는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론과 같은 교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일본의 신학자 노로요시오는 웨슬리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토무스를 사랑하고 존경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그의 그리스도론이 안디옥 형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는 교리적이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기르는 일을 목적으로 했다. 또한 웨슬리의 아르미니안주의도 안디옥형의 그리스도론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실존의 세계 속에서 실존의 본질적인 모습을 지니고 끝까지 살아온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적인 자세를 지니게 된다. 자신의 자유 의지를 통하여 인간화의 길을 가는 것을 표방하는 아르 미니 안 주의는 안디옥형의 그리스도론을 지향하고 있음을 본다.

IV.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은 육체를 취하는 신의 행위, 즉 신성이 나눌 수 없는 합일 안에서 인간성과 결합하는 것이다. 먼저 웨슬리는 예정론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른 의향과 행위가 현실화되기 전에 인간의 의향과 행위를 미리 알고 계신다는 예지론을 주장한다. 예지론은 인간의 구원의 유무는 인간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본다. 예지론은 하나님은 아담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간이 범죄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최종적으로 아담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하나님도 예측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를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당시의 상태보다 더 행복한 상황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생각하고 계셨다고 주장한다. 웨슬리는 예지론에 의거하여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이 인간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아담의 범죄를 저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알고 인간 본래적인 오만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V.
속죄와 화해를 위한 제사장의 역할을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직능은 속죄론의 중심이 된다.

웨슬리의 속죄관

윌리엄 로의 속죄관

로의 속죄 관념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와 희생이 배제된 속죄 관념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극기의 생활 또는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통해서 속죄 관념을 해결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을 용서하기 위해서 괴로워하게 된다. 그 괴로움을 하나님 자신이 담당하게 된다는 일이 속죄론의 표현이다. 웨슬리의 속죄론을 보면 하나님 자신이 죽음을 경험하고, 괴로움을 짊어지셨다는 사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에 관계되는 죽음이나 괴로움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본질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태가 아니고 시간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태이다.

즉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든지 고뇌라든가 하는 것은 관계적 개념이지 본질 개념이 아니다. “사람은 외부에 아무리; 많은 곤란한 일이 있어도 영혼의 깊은 곳에는 평화로울 수 있다. 마치 바다의 표면은 거친 파도가 쳐도 바다 밑바닥은 조용한 것처럼 하나님의 본질은 변질되지 않는다.”

2.
속죄의 보편성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에게는 저항이 가능한 은혜였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속죄의 보편성은 존재하지만, 누구든지 최종적으로 모두 구원을 얻게 된다는 보편적 구원설(Universal salvation)은 존재하지 않는다. 웨슬리는 또한 칼빈의 이중 예정론을 공격한다. 이중 예정론은 인간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을 변경하거나 인가에게 구원을 선택할 자유의지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1)
예정론은 모든 설교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설교를 듣든 말든 선택된 자는 구원을 얻기 때문에 설교와 함께 모든 교회의 사업은 의미가 없다.
2)
예정론은 성화를 망쳐 놓을 경향이 있다.
3)
예정론 변호자들은 자신들의 영원의 삶이 죽음이 어느 편으로 결정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성화를 구하게 된다.
4)
예정론은 종교적인 위로와 그리스도교가 주는 행복을 소멸할 수 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버림받을까 의심하여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경향을 갖게 된다.)
5)
예정론은 그리스도교 계시의 불 필요성을 조장한다. 이미 구원이 결정되었다면 계시는 있으나 마나 하다.
6)
예정론자들은 성서를 모순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 예정은 사람들이 계시에 거는 기대를 감축시킨다.
7)
예정론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분명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미 구원에서 제외되도록 결정된 자에게 이 말을 예수가 했다면 그는 웃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웨슬리가 이토록 이중 예정론을 반대하고 공격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모두에게 관계된다는 속죄의 보편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보편적 속죄 사역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만 구원을 받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가?
칼빈: 하나님의 영원한 뜻인 예정 때문에
웨슬리: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때문에

3.
웨슬리의 속죄론
그의 속죄론은 하나님과 악마의 관계라기보다는 우선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다는 사실, 즉 인간 구원을 속죄론의 근거로 본다. 웨슬리는 악마가 인간에 대하여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기에,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가 성립되면 악마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된다 본다.

웨슬리의 속죄론은 도덕적 감화설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도덕적 감화설은 형벌 대상론을 입구로 하고 있다. 형벌 대상설은 예수그리스도가 먼저 인간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객관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주셨다는 설이다. 웨슬리는 아벨라드의 속죄론의 중심사상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과 죽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에게 도덕적 감화를 준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생활과 죽음에 절정을 보인다는 사실에는 그도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하나의 도덕 선생으로 보는 그의 의견에 웨슬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웨슬리의 속죄 이해는 대체로 안셀름의 사상에서 나타나고 교회는 대체적으로 안셀름의 만족설을 정통신학으로 받아들였다.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확립하고, 인간의 죄를 벌하고 상처 입은 영예를 회복하는 길을 택하셨다. 이 일은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손상된 영광이 회복되었고,그분께서 만족하셨다. 만족 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어떤 상급을 내리려 했으나 그리스도는 상급이 필요치 않으므로 대신 인간에게 상급, 즉 구원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셀름의 만족설의 논리이다.

신학자 아네트는 웨슬리의 속죄론이 역사상 저명한 몇 개의 속죄론의 흐름을 혼합한 것과 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마치 안셀름의 만족설과, 교부시대에 있었던 하나님과 악마의 투쟁설을 반영하는 듯하다. 웨슬리는 화목 제물을 상처 입은 하나님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렸다는 대상설역시 반영되어 있다. 노로요시오는 웨슬리의 속죄론은 형벌 대상설 계열에 속한 것으로서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그 중심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속죄론이 지니는 진리 계기를 주변에 배치해 둔 것이라고 보았다. -> 그의 속죄론은 종합적이다. 또한 동시에 그의 주장이 명확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웨슬리의 속죄관은 종합적인 무엇이다. 둘 중에 하나가 아닌 둘 다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예수를 통하여 예수 안에서 고통을 당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V.
예언자와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웨슬리의 예언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뜻이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예언적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의 오묘한 계시 그 자체이다. 즉 그리스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예언이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입법자인 동시에 해석자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율법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이고, 그리스도의 인격의 명확한 형성이다. 동시에 그분은 죄를 깨닫게 하는 스승이었는데 이는 그의 예언자 직분과 연관된다.

또한 웨슬리는 악마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성화라는 현장의 신자의 체험으로서 이해했는데, 이것은 그의 체험론적 신학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영광화된 인간성을 말했다.

VI.
성화의 표준과 모델로서의 그리스도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자신의 특이한 가르침인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연결시킨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후손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에게 칭의의 근거를 제공하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에서 성화를 위한 규범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부활은 칭의의 근거이다. 웨슬리의 부활 교리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의인의 성화와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부활로 생긴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되었다.그리고 이 부활로 생긴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화의 기초이다.

그리슫의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부활을 우리 안에 성취하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신자들의 현재적인 삶에 관계가 되는 실존적인 사건이다.

웨슬리에게 성결은 순간순간 주를 의지함으로써 유지되는 완전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품으셨던 마음을 우리가 품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성결의 중심이라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철학적 사변보다는 실제적 삶에 있다고 보았다. 논쟁적 신학은 교화로 이끄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새 인간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분이라 보았다. 웨슬리의 그리스도론은 영국 전통 교회의 그리스도론으로 여기에다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진정한 체험을 강조하는 그리스도론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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