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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가 자유시장에 바치는 찬가, 『노예의 길』세상에서 주목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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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uboy 2020. 12. 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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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하이에크는 그의 비관론적 대적인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을 저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의 전기 작가 앨런 에번스타인이 언급한 대로 노예의 길로 하이에크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는 무명의 경제학 교수였던 하이에크는 출간 뒤 한 해가 지나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하이에크는 아주 겸손하게 기껏해야 수백 명 정도만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하면 괜찮은 성과였다.

하이에크는 1937년 월터 리프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곳의 진보적인 친구들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과 집산주의적 실험은 불가피하게 파시즘을 초래한다는 것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한다. 이 점을 꼭 납득시키고 싶다.”라고 썼다. 하이에크는 자유시장을 버리고 계획 경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한들 결국 폭정을 초래하기 쉬운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하이에크는 경제를 계획하는 사람이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어떤 수준 이상으로 가로막기 시작하면, 모든 문제에 간섭할 때까지 그의 통제력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노예의 길1944310일 영국에서 라우틀리지 출판사를 통해 2천 부가 출간됐다. 그런데 단 며칠 만에 2500부를 더 인쇄했고, 얼마 안 가 책을 찾는 독자의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물량이 달렸다. 미국에서는 주력 출판사 다수가 출간을 거절했지만, 1944918일 시카고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됐다.

노예의 길의 주된 공격 표적은 하이에크가 두 가지 악으로 판단한 사회주의와 파시즘이었다. 하이에크가 책을 쓸 시점에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2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과 미국 등 연합국 세력에 참여한 상태여서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수위를 낮춰야 했기에 나치즘과 피시즘의 위험을 더 많이 언급하게 됐다. 하이에크는 통상적으로 극좌와 극우를 서로 정반대인 양극단으로 여기는 인식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극좌와 극우 모두 시장의 작동을 폐기하고 포괄적인 국가 계획을 동원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경제를 계획하는 사람은 다른 사회 구성원의 의지를 알 도리가 없는 탓에 경제를 계획하려고 들면 어쩔 수 없이 독재자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하이에크는 연합국이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고 나면 전시에 경제를 관리하던 방식을 전후 사회에서도 번영에 기여하고 공정성을 높여줄 거라고 판단해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다. 그래서 정책이 그 방향으로 향할 경우 전체주의의 씨를 뿌리게 되고 역사가 되풀이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적 문제에서 자유를 야금야금 포기해 왔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도 존재하지 못했다.” 이 길로 들어선 우리는 지금 독일이 처한 운명을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라는 것이다.

노예의 길
일반이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이에크는 커다란 틀을 구상하고자 한 케인스의 동기를 인정한다. 만성적인 대량 실업의 위험도 인정하고 경제 활동 전반이 출렁거리는 경기 순환과 그에 동반해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대량 실업과 싸우는 일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이자 우리 시대에 닥친 가장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 중 하나라는 점도 인정한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책이 정부 개입이 아닐 뿐이다. “만성적인 실업을 해결하려면 좋은 뜻에서의 계획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경제 계획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시장을 특수한 종류의 계획으로 갈아 치워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하이에크는 국가가 경제 활동을 지휘하는 케인스주의적 세계를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를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경쟁의 영역에 훨씬 심각한 제약을 가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방향으로 실험할 때는, 경제 활동 전체가 정부 지출의 방향과 규모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도록 신중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하이에크는 이처럼 지적했지만, “신중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가 오래전에 약속한 대로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강력하게 무너뜨리는 비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바로 이어서 하이에크는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실업을 치유하는 해결책은 경제적 안전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도 아니며, 내 생각에는 가장 유망한 길도 아니다라면서, “이러한 경기 순환에 맞서는 보호 수단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이 두 문장은 모호하기만 하다. 국가 개입이 자유를 위협한다는 하이에크의 불길한 경고는 케인스가 제안한 대규모공공사업을 빼놓고 한 말이었을까? 하이에크가 이를 배제하고 말했을 리는 거의 없지만,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하이에크는 여기서도 케인스를 분명히 조준했지만 집중 사격을 날리지 못했다.

설령 하이에크가 케인스주의 경제 계획으로 반드시 자유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케인스가 제안하는 정책 사업에는 점진적 물가 상승 Creeping Inflation이라는 너무 큰 대가가 따른다고 판단한 것만은 확실했다. “만일 우리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실업을 용납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면, 그리고 (사람들을 강제로 일을 시키는) 강압적 조치만은 피하고자 한다면, 임시방편적인 대책을 닥치는 대로 동원하게 될 것이다.

노예의 길
이 뒤늦게 케인스에게 답하는 책이었다고 보면, 하이에크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케인스는 일반 이론에서 정부 개입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거시 경제학이라는 경제학의 새 영역을 통째로 만들어냈다. 거시경제학은 경제 활동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하향식 관점이며, 이를 통해 나라 전체의 경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이 나오기 전에는 경제 활동의 각 요소를 따로따로 보는 미시경제학적 수단만으로 경제학을 이해했다.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이며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이라는 말은 케인스의 사후에야 생겨난 것이다. 그만큼 케인스는 자기 시대를 훨씬 앞질러 살았다. 또 계획자들이 경제의 여러 차원을 진단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부상한 것이,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이다. 비록 케인스는 이 분야를 아주 부정적으로 봤지만 일반 이론의 내용을 수량적으로 측정하려는 경제학자들의 의욕을 자극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계량경제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반면에 하이에크는 새로 태어난 경제학 분야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반 이론의 분석과 더불어 철학적 접근에서 사회과학적 접근으로 전환하게 된 변화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중에 하이에크는 케인스주의자들이 작정하고 해로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한편 하이에크는 대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인 만큼
『노예의 길』에서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예의 길』은 국가의 공직에 참여해 기여하고자 열망하는 모든 사람과, 국민의 진정한 의지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모든 종류의 정치인을 싸잡아 단죄하는 책이기도 하다. 하이에크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존재로 인해 국가가 계속 비대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선출된 개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의회 기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 자체에 고유한 모순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하이에크는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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