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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 윤철호,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 소논문 요약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1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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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감과 탁월함을 함께 보유한 윤철호 교수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

책 이름: 그리스도론(Christology)

출판사: 한국조직신학회

집필자 윤철호 교수의 약력
장로회 신학대학원(M.Div.)
미국 Princeton 신학교(Th.M.)

Northwestern 대학교 & Garrett Evangelical 신학교(Ph.d)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
신약성서는 단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치중립적 관점에서의 전기적 기술이 아니다. 그리고 단지 저자와 초기 교회의 구원론적 열망의 신화적 투사도 아니다. 신약 성서 안에는 다양한 그리스도론적 관점이 드러난다. 최초 시기의 교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론의 문제가 기능론적 차원에서 존재론적 차원으로 발전되어 갔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개연성을 추론하는 것은 가능하다.

바울서신
바울의 그리스도론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보다 그 자신이 경험한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현이다. 이미 구약 성서 후기에 하나님의 창조적 지혜가 율법과 동일시되었다(집회서,바룩서). 그리고 묵시문학의 시기에 이스라엘의 메시아사상은 인자 전통과 결합됨으로 초월적 보편적 차원으로 발전되었다.

바울에게는 지혜 그리스도론과 함께 아담 그리스도론이 나타난다. 바울은 예수를 둘째 또는 마지막 아담으로 표현한다. 제임스 던에 따르면 바울의 그리스도론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5:15-19). 아담 그리스도론이 영지주의적인 구원자 신화와 구별되는 점은 선재적인 신적 존재가 이질적인 인간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인 예수의 삶과 죽음에 전체 인류를 위한 초역사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던에 의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첫째 아담과 마찬가지로 둘째 아담은 선재적 존재가 아니다(?). 바울은 예수가 주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적인 죽음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1].


슈툴마허에
따르면, 바울은 칭의를 세례의 순간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의 삶과 역사 전체의 과정 속에서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으로 이해한다. 1) 부활하신 주님은 온 우주를 하나님과 화해시킨다이 목표는 죽음이 세상에 대한 힘을 완전히 상실하는 종말의 때에 완성될 것이다. 2)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 이스라엘도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구원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3) 부활하신 주님은 의롭게 된 죄인들, 즉 믿는 자들의 실존을 붙드신다.


마가복음

기원후 66-73년은 유대전쟁의 시기였다. 이 전쟁은 기원후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우고 유대인 저항군을 진압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 이때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마가는 자신이 베드로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예수 전승을 기록한다. 이는 로마의 박해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해서이다.


반면 예수의 말씀에 관심을 집중하는 마태[2]와 달리 마가는 예수의 행동에 관심을 보인다.
1)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유한한 인성이 잘 나타난다.
2)
마가는 또한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는 신적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3)
마태복음과 달리 마가복음에는 보편 구원 사상이 드러난다.

4) 예수에 대한 마가복음의 이야기는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전환을 통한 대조적 구조를 보인다.

마가가 예수의 이야기를 수세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메시아로서의 예수의 신적 권위의 원천이 수세 시의 성령의 임재에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마가복음은 주는 그리스도 니이다”막 8:29)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더불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전환된다. 전반부에서는 예수의 메시아성이 은폐되어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예수의 메시아성이 공개된다. 전반부에서 예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신적인간으로 나타나지만, 후반부에서 예수는 고난 당하는 인자로서의 메시아로 나타난다.

마태복음

마태복음의 일부 본문은 마태복음의 저자가 기원 후 70년에 있었던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를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22: 6-7)

[22:6,
개정]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22:7, 개정]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23:37,
개정]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23:38, 개정]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태복음은 마가복음보다 한 단계 발전된 신성 그리스도론의 특징을 보인다.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신적 권위는 마가복음에서처럼 요단강에서 있었던 수세 사건으로부터 기원하지 않고, 성령의 잉태로 인한 동정녀 탄생으로부터 기원한다. (1: 23). 마태는 예수의 생애의 사건들이 구약의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줌으로써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이 대망해 왔던 메시아임을 증언하고자 한다.

마태는 하늘나라란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이 단어의 사용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이름 대신 하늘이란 말을 쓰던 관습을 반영한다. 하늘 아버지란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심판의 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등의 표현은 유대의 묵시문학에서 많이 사용된 표현들이다.

물론 마태복음이 유대적 관점을 가졌다는 말은 단지 예수를 유대교의 연속선상에서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유대교의 율법과 예수의 가르침 사이의 불연속성이 더욱 강조된다.

예수는”옛 사람에게
말한 바….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에서 옛 사람은 모세를 의미한다.[3]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비유, 달란트 비유, 인자의 심판 비유는 마땅히 실천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한다. 마태복음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종말론은 구원과 심판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을 베푸는 사랑의 실천 여부에 달려있다.

누가복음

초기교회에 있어서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로마 당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주님, 구주로 전하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으로 오해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박해와 고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는 예수가 정치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된 것이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선교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그는 로마 당국과 그리스도교의 관계가 절대 대립적이지 아님을 보이길 원했다. 그럼으로써 로마 세계 안에서 선교의 기틀을 다지고자 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은 빌라도의 유죄 판결이 아니고, 그를 고소하고 백성들을 선동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다. 누가에게 있어서 예수의 정치적 무죄를 입증하는 것은 곧 초기교회의 정치적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전제였다.

누가복음만큼 예수의 성령충만함을 강조하는 곳은 없다.

누가복음의 사상적 특징은 인도주의와 보편주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예수는 가난한 자, 세리와 죄인, 여인들에게 인도주의적 관심을 보여준다(눅 4: 18). 10: 38-42의 이야기에서 예수는 접대하는 일에 분주했던 마르다보다 남자와 똑같이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집중한 마리아를 칭찬한다. 이는 누가가 가졌던 남녀 평등적인 사고를 잘 보여준다. (인도주의적 관점)

 

2) 마태복음과 대조적으로 누가복음은 이방인의 복음서라고 불린다. 누가의 보편주의적인 관심은 예수의 족보 구성에까지 올라간다. 누가는 예수의 계보를 인류의 조상인 아담까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에게까지 소급시킨다. 또한 율법교사와의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영생을 얻을 사람의 한 모델로 제시된다. 이러한 누가의 보편주의적 사상은 누가복음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서 잘 드러난다.

요한[4]복음

가장 후기에 기록된 복음서인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은 선재적 고그리스도론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1: 18). 매쿼리는 요한복음과 공관 복음서의 주된 차이점을 다음 몇 가지로 제시한다. (1) 공관 복음서에서 관심이 예수의 선포와 가르침과 그 내용인 하나님 나라에 집중된다. (2)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자신의 인격이 관심의 초점이 된다.

또한 요한에게서는 개별적인 연설뿐만 아니라 더 길게 연결된 강화(discourse)가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비유들 대신에 은유들이 나타난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지혜가 자라갔으며” 제자들이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야 (아마도 부활 후)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식하게 된다.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지식과 인격이 성장하고 심화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이 없다.

공관복음서에서는 대체로 지상의 인간 예수로부터 출발한다. 이 예수는 역사의 과정을 통해 그리고 특별히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계시된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은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은 하늘의 신적 존재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다.

공관복음서의 저자와 바울의 관심점은 주로 미래를 향한 종말론이었다. 하지만 요한의 주된 강조는 미래에 기대했던 바가 이미 현재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 18)”. 요한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있어서 지배적이었던 임박한 종말론적 기대를 변화된 상황 속에서 실존론적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은 한마디로 로고스 그리스도론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로고스개념이 요한복음 서두 이후에 더는 쓰이지 않지만, 그 이후의 모든 내용은 말씀 그리스도론의 전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고 말함으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하나 됨과 유일무이한 직접적 관계성을 강조하는 선재적 그리스도론, 이것을 강조해서 전통적인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재규정한다.

Raymond E. Brown
은 요한의 그리스도론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두 가지 요인을 유대의 전통으로부터 이끌어낸다. 하나는 “육화된 지혜사상, 다른 하나는 모세와의 대구법이다. 브라운은 요한복음처럼 인격화된 지혜 개념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신약성서의 책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요한이 지혜문학의 지혜 용어와 상징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자신의 양식을 나누어주기 위해 내려온 인격화된 지혜와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 때 보고 들은 것을 전하기 위해 내려온 모세 이 두 가지가 요한복음에서의 선재적 고그리스도론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한편, 다드는 요한복음의 로고스가 히브리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필로에게 나타나는 스토아적인 이성적 원리’ 두가지 모두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같은 구절은 구약 성서의 말씀이나 토라의 관점에서 설명되기 힘들다. 이는 지혜문학의 관점에서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지혜는 세계 안에 내재하는 위격화된 하나님의 사고를 표현한다. 다드는 지혜 문학에서 인간 안의 지혜의 내재 개념이 성육신 사상을 위한 모태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구절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드는 요한복음 서두의 로고스 개념이 헬레니즘 유대 주의의 사고를 반영하는 필로의 로고스 개념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단지 하나님에 의해 발화된 말씀이나 명령이 아니라, 우주의 의미, 계획, 목적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정신 안에서 형성되고, 우주의 질서에서 투사되고 표현된 하나님의 사고이다. 로고스는 계시된 하나님이신 것이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말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고와 이성적인 원리이다.

신적, 본질적 인간성으로서 인간 안에 내재하는 로고스 사상과 인간의 거룩한 영혼 안에 들어가 그를 하나님의 친구와 예언자로 만드는 신적 지혜의 사상은 로고스의 성육신 사상을 예비한다. 즉 하나님의 사고로서의 신적 위격이 이 세계 안에서 자신을 체현하고, 인간의 생명과 빛이 된다는 사상은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진술, 즉 신적 위격이 인간 안에 자신을 체현함으로써 육신이 되었다는 진술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즉 요한복음은 구약 성서의 말씀과 유대의 지혜 사상이 여전히 전제하고 있는 유일신론의 범주를 넘어 후대의 삼위일체론의 형성을 위한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열었다.

결론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그리스도론들이 서로 다른 특징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르게만 보이지만 그 가운데 본질적인 연속성이 있다.

1)
모든 성서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예수가 구약의 예언자들이 약속한 메시아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유대인의 기대를 넘어선, 인류의 구원자로 제시한다.
2)
바울과 모든 복음서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을 보인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메시아 명칭보다 분명하게 예수의 신적 기원을 표방한다.
3)
바울서신과 복음서는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제시한다. [5]

4) 결과적으로, 다양한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들 가운데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론이 후대의 니케아 신조의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삼위일체 교리를 위한 성서적 근거가 되었다. 이것이 두 단계의 차원을 통해 발전된 신약성서 그리스도론의 최종적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느낀점

윤철호 교수의 정리는 탁월하고 균형감이 있다. 예전에 목회자들의 설교 비평을 한 어떤 책을 읽고 그에게 놀란 기억이 있다. 아니 장신대에 이렇게 균형 잡힌 교수가 있다니? 이렇게 통찰력 있고, 날카로운 글을 쓰다니? 그의 짧은 글이 이 책에 실렸지만, 많은 깨달음이 생겨서 좋았다. 윤철호 교수가 은퇴 후에도 한국 교회를 위해 좋은 저작물을 내놓았으면 한다.

 

 


[1] 개인적으로 던을 좋아하지만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다.

[2] 마태는 유대교와 대결하는 교회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를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는 율법의 완성자로 그린다.

[3] 1) 애굽의 바로 왕이 히브리 족속의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했다, 이처럼 예수가 탄생했을 때 헤롯은 베들레헴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명한다. 2) 모세가 나일강에서 구원받았듯이, 나일 강이 있는 애굽으로 피한 예수는 죽음을 모면했다. 3)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같이, 예수는 광야에서 약 40일간 금식했다. 4)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의 말씀을 받았듯이, 예수는 산에서 새 율법을 선포했다. 5) 모세가 출애굽 할 때 10가지 재앙을 일으켰듯이, 예수는 10가지 이적을 행했다. 6) 모세가 시내산에서 구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것같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변화산에서 구름 가운데 변화된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4] 공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은 정치적이 아닌 실존적, 역사적이 아닌 영적, 현세적이 아닌 내세적, 유대적이 아닌 보편적 그리스도상을 보여준다.

[5] 물론 각 책에서 사용되는 이 명칭들의 의미가 모두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개념에 대해 좀 더 정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적 개념인 예언자나 메시아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개념과, 지혜전통에서의 인격화된 지혜 사상 또는 헬레니즘의 신적 인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하나님의 아들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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