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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서적] 오리게네스 기도론

신학서적

by noruboy 2020. 4. 9.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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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으로 건질 것이 많았던 책!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면, 굳이 우리가 기도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이 세상 만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히 예지하시는가? 그렇다면 그 말은 바로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 우리는 살면서 이런 질문을 한번씩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정도를 넘어 교회 내에서 심한 문제로 불거진 적이 있었다. 암브로시우스와 오리게네스의 활동 시절에 이런 질문들이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이 존경하는 오리게네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에 대한 답을 요청한다. 오리게네스의 기도론은 이런 배경하에 작성되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 책의 저술 배경이 꽤 흥미롭다. 오리게네스는 이단으로 판정 받지 않았나? 그래서 교회사에서 그의 방대한 저술들이 강제로 소각되지 않았나? 반면 암브로시우스는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승 아닌가? 어떻게 존경 받는 암브로시우스가 오리게네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단 말인가?

오리게네스는 제자의 요청을 받은 후 신속히 답변한다. 이 책의 주해를 담당한 장용재 박사는 이 사건을 그냥 우발이고 우연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기엔,
사건에 대한 배경이 매우 방대하다고 말한다. 즉 기도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체념적인 태도가 고대 그리스 사회 시대로부터 쭉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는 자유로운 형식의 기도가 언제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과 다른 점이다.

 

그리고 특정상황에 맞는 정확한 기도문을 낭독하는 것만이, 인간이 신으로부터 기대했던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겼다. 즉 잘못된 태도나 잘못된 언어의 사용은 기도의 목적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도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그들은 물질적인 것들 역시 신에게 구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것들은 덕스럽지 못하고, 순결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 예로 막시모스라는 사람은 신은 아무런 해로운 것도 선사하지 않으므로, 물질적인 것에 대한 기도를 해도 응답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해로운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물질같이 해로운 것들을 응답으로 주시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는 물질을 구하는 것은 이성과는 관련이 없는 행운의 선물이기 때문에 이런 기도는 무의미하다고 폄하했다.

 

또한 이 그리스의 철학자는 기도자가 구한 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기도 없이도 구한 것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자가 구한 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면 기도를 한다 해도 구한 것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굉장히 율법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은 신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개개인의 기도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여겼다.

 

한편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은 운명은 바로 폭군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운명은 변경불가능하며, 인간을 폭력으로 짓이기고, 결국 자신을 강제적으로 따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인간이 하는 간구나 애원은 무효한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섬기는 제우스 역시 운명에 반대되는 것들은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이유 때문일까? 그들은 기도 대신 인간의 탁월함을 강조한다.

 

"어떤 장인이 스스로 수공 일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하자. 과연 그가 쟁기를 만들기 전 신에게 기도하겠나?" 이런 식인 것이다. 즉 인간이 탁월해서 혼자서 잘 살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행복을 오직 자신들의 능력으로 쟁취할 수 있다 여긴 것 같다. 그들에게 신은 인간이 획득할 수 없는 것들은 줄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의 목적이란 무엇이었을까?

 

기도의 목적은 바로 그들이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원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고상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고, 이런 과정 가운데 신들과 품위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도였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결국 기도를 해도, 그것에 대한 결과가 사전에 결정되었다는 극단적 운명론으로 이어졌다. 그들에게 있어 기도는 자신들의 위로나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오리겐은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의 뿌리가 무엇인지 밝히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항해 강하게 논박한다. "정말 기도가 필요 없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정말 만물 위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그들이 그렇게 여긴다면 인간은 기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냥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개중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놓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류는 그분의 섭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물론 오리겐 역시 성경에서 숙명론적인 구절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바로 창세기에서 에서와 야곱의 운명이 결정된 부분이다. 하지만 오리겐은 예지와 예정을 구분한다. 하나님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남을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이 하는 어떤 일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질서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그는 이 둘을 구분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기도와 신의 섭리에 대한 상호 이해는 대립적으로 보인다. 특히 스토아 철학의 세계관에서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신들 역시 자연의 섭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이해는 매우 협소한 개념인 것이다. 설령 우리의 모든 것들이 정해져 있어서, 우리가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바꿀 수 없다고 할지라도 기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리겐의 탁월함은 여기에서 나타난다. 오리겐은 왜 기도가 필요한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 기도를 통해서 절대자인 하나님과 연합되며, 이는 그분과의 교제로 이어진다. 인간의 간청을 신에게 알리는 것으로, 기도를 한정한 그들의 사고에서 오리겐의 기도 개념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오리겐은 온 땅과 하늘을 채우신 주님의 영과 교제하는 것, 그 자체가 기쁜 일이라고 말한다.

2) 성경의 어떤 부분은 숙명론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간혹 결단력 있는 기도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예들이 존재한다 (구약 요시아 왕). 여기에서 오리겐은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섭리 사이에는 인간의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가 있다고 여긴 듯 하다. 그래서 인간의 결단력 있는 기도가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3) 기도를 하지 않는 행동은 우리에게 주시는 일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는 배은망덕하고 제 정신이 아닌 행동이다. 설령 우리의 운명이 다 정해졌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감사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지 않는가?

 

4)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주변의 거룩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일관되게 신실하기 힘들다. 하지만 태양과 별은 항상 일관되고 신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우리가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에서 벗어나 하늘에서 오는 선한 것을 누리기 위해서다.

5) 왜 그리스 철학자들은 오직 앉아서 눈을 감고 하는 것만 기도라고 생각할까? 오리겐은 달랐다. 그는 덕행이나 계명 실천 역시 기도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삶의 실천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올바른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우리가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기도를 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개념은 이단과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도 못한 기도의 영역이었다. 그들에게 기도란 매우 수동적인 것이었지만, 오리겐에게 있어 기도란 삶에서도 실현될 수 있으며, 또한 매우 능동적이다.

 

6)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역시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얻지 않았던가? 예수님도 그러한데 과연 누가 기도가 무의미하다 말할 수 있는가?

 

7) 하나님은 종종 인간에게 기도를 요구하셨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운명이 바뀐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경외 받아야 할 존재이며, 인간이 그분을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함을 나타낸다.

 

8) 기도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설령 내 운명을 기도로 내가 크게 바꾸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도해야 할 이유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배울 것이 없다고 여겼던 그에게 좋은 통찰력들을 배워 기뻤다. 그리고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오리겐은 성경 신학자라기 보다는, 조직 신학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경 본문이나 배경보다는 자신의 신학개념으로 본문들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주장에 대체적으로 동의가 되었지만, 현대인의 시선으론 좀 갸우뚱 한 구석들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할 때 어느 쪽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가? 그리고 태양과 별과 같은 행성에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생각은 지금 우리에겐 많이 의아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어떤 정죄를 받았든, 우리가 그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제한적인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이단적인 주장을 차치하고서도, 이 저작물 하나로도 매우 특별한 사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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